근대적 의미의 박람회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761년이다. 영국의 왕립미술공업상업진흥회가 개최한 공업품 전시회가 효시다. 그 후 1851년에 개최된 런던대박람회를 필두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박람회가 계속 열렸다.
우리나라가 국제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부터였다. 그 기념으로 세워진 것이 아직도 건재한 에펠탑이다. 그때 우리의 출품작은 갓, 모시, 돗자리, 가마, 표범가죽, 불상 등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1928년 국제박람회 조약이 제정되고 그 사무국을 파리에 두었는데, 그 바람에 편승해 일제는 소위 '시정' 수단의 하나로 '전조선박람회'를 창경궁 등지에서 개최했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주요 테마였음은 물론이다.
광복 후 가장 큰 규모의 박람회는 경복궁에서 열렸던 '산업박람회'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권력의 정통성 극복을 경제 개발에 두고 있던 국가최고회의가 주도했던 것인데 열정에 비해 그 수준은 유치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늘 인천에서 막을 올린 인천세계도시축전은 '미래도시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고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첨단기술을 보여주는 박람회'이자 '도시를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국제행사'여서 주목이 된다.
해외 105개, 국내 32개 총 137개 도시가 80일간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도 자못 기대된다. 그와 함께 '국제화의 시금석'이 될 이번 축전이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도 헤아려 보게 된다.
아무쪼록 '인천의 힘'이 '한 시대가 이룩한 성과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무대'에 화려한 불꽃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