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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49세의 200억원대 여성자산가가 신랑감 후보자를 공개모집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엔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70대 노부부가 무남 외동딸의 배필을 구한다며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같은 방법으로 후보자를 모집한다고 나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부동산사업을 하는 1천억원대 자산가는 작년에 자신의 딸 A씨(40세·대학강사) 몰래 딸의 배우자감을 공개구혼했다. 접수 하루만에 320여명의 신청자가 몰려 당일 마감했고, 약 1년6개월 뒤 A씨는 의사와 결혼하였다.

올해 5월 공개구혼에 나선 약 200억원대의 자산가 B씨(여·49세)는 이른바 골드미스로 현재 11살 연하의 남성과 사귀고 있다. 접수 시작 2주만에 435명이 지원했다. 그중 20대가 총 55명이나 되고, 가장 어린 지원자는 24세 대학생이었다. 영화에서나 볼듯한 이야기이다.

결혼정보업계에 따르면, 대개 딸을 가진 재력가 부모는 가임 연령 때문에 혼인 적령기 내에 있는 딸을 몰아붙여 공개적으로라도 신랑감을 찾는 경향이 많고 아들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연상의 며느리를 보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재력가 집안에서 자녀들의 배우자감을 공개구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지기 위한 의도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부터 계층간 이동 통로가 더욱 좁아지고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당사자들의 심정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건과 환경을 너무 중시하는 것 같은 최근의 결혼풍속도는 인간애와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혼인은 쌍방이 배우자적 신분을 취득함과 동시에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의 일종이다. 다만 그 실질에 있어 서로 정신적·육체적·경제적인 면에서 종생(終生)에 걸쳐 협동체가 되며 성적(性的)으로 결합체가 된다는 면에서 일반 자산 관련 계약과는 그 성질을 달리한다.

지금도 결혼을 남녀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낭만적인 순수함의 발상일까. 아직도 많은 남녀들이 서로의 애정을 바탕으로 비록 현재의 조건과 환경은 미흡하지만 장래의 가능성을 보고 평생을 동반자로 받아들여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결혼 전에 장래 파경에 이르렀을 때의 재산분할·위자료문제, 배우자와 자녀부양 문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혼전계약이 이용되어 왔다. 특히 미주에서는 활용도가 거의 50%에 이를 정도로 결혼 전에 체결하는 흔한 계약이다. 동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커플들 사이에서는 동거계약이 체결되기도 한다. 너무 계산적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네 정서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 제도이다.

필자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이혼사건을 처리하였고 지금도 다수의 이혼사건을 다루고 있다. 많은 경우 이혼소송 진행 중에도 서로 으르렁대거나 심지어는 상대방을 대면하기를 거부하고 드물게는 사설경호원까지 고용하여 법정에 출두하는 경우를 보면서 헤어져서도 서로 친구처럼 지내거나 자녀들의 장래를 고려하여 신사적으로 관계를 종료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미국영화 중에 'The Notebook(라이언 고슬링·레이첼 맥아담스 주연, 2004년 제작)'이라는 영화가 있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자란 두 청춘 남녀는 카니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을 계기로 미칠 듯한 사랑을 하게 된다. 색감이 예쁜 아름다른 배경과 함께 두 남녀의 뜨거운 애정이 참된 부부애로 승화되는 감동이 가슴 진하게 다가오는 한 커플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멜로이야기로, 진정한 인간사랑이 무엇이고 참된 부부애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싶다면 아마도 잠시나마 이 무더위를 잊게해줄 좋은 소재가 될 듯하다.

/이종엽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