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늦은 시각 독서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생님! 우리 손녀가 지금 막 태어났는데, 예쁘고 좋은 이름 하나 지어주세요." 평소 밝고 쾌활한 성품인 여사님은 첫 손주를 봐서인지 억양이 상기되어 달뜬 음성이었다. 엄마 아빠의 생년월일을 묻고 아기 사주를 적은 순간, 온몸에 맥이 풀리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2008 戊子년 己丑월 癸亥일로 수기가 태왕해 관성인 戊土(남편)가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는 형국이라 앞으로 이 아기가 살아갈 험난한 세월이 걱정 되었다. 무엇보다 정해진 운명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그럴 잘 아는 필자로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연 운명이란 무엇이며, 또한 일단 정해진 운명은 정녕 바꾸어 놓을 수없는 것인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가끔은 성역과 같은 운명 앞에, 꼼짝 못하고 이끌려가던 내 자신의 지난 생에 과거를 비추어 볼 때도 끔찍했던 기억이 허다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좋은 사주를 타고난 아기는 이름을 지어도 쉽게 지어지는데 반해 사주가 나쁜 아기는 이름을 지어도 애를 먹이고 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에게도 그런 운명의 끈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빗장을 채우고 운신조차 하지 못하도록 한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든 고통과 시련으로 인해 괴로움이 수반되고, 당시의 힘든 내 상황은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 누구보다도 운명의 순환법칙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견디기 힘든 고통도 참고 인내하며 견디어낼 수 있었다고 본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래서 출생하는 그 순간,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풀어야 할 숙제를 풀기 위한 또 다른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는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길흉이 엇갈리게 되는 운명(運)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운명(運)은 바로 우리가 운전해 나가는 방향에 따라 불변의 숙명도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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