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인천일보 창간과 동시에 각자의 영역에서 부지런히 역사를 일궈 온 주역들이 인천지역 곳곳에 숨어있다. 인천과 인연을 맺은 사람도 있고 마음의 양식을 주는 기관도 있다. 이들의 21년 삶과 역사엔 오늘 인천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인천일보, 소중한 일거리 주는 존재표구점

이영권씨 부부 … 손님들 신문 들고와 액자 부탁

이영권(47)·최향자(43) 부부는 인천시 남구 주안6동 석바위 지하상가 부근에서 표구와 실사출력을 전문으로 하는 '소망사'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 이 씨에게 1988년은 특별한 해다.

군 제대 후 인천시 동구 배다리에서 제법 규모 있는 표구사를 운영하던 큰 형님으로부터 표구 일을 배우다 독립해 석바위 지하상가에 처음으로 자신의 점포를 개업한 날이 1988년 5월 5일이기 때문.

이후 이 씨는 근처로 점포를 옮기긴 했지만 21년 동안 변함없이 액자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다.

단돈 100만 원을 들고 어렵게 시작했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수입도 많아졌고 덕분에 결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한파 직후엔 광고회사, 견본주택 등과 거래하는 액자 납품이 급감하고 거래처들이 줄 부도 나면서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원판과 어울리는 색깔과 디자인으로 액자를 만들어 내는 것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자부심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으로 요즘 원자재값이 오르고 일감이 줄어 힘들지만 컴퓨터를 활용한 실사출력, 광고물 제작 등 틈새시장에서 새로운 활력소를 찾고 있다.

이 씨에게 인천일보는 '소중한 일거리를 가져다 주는 존재'다.
자신처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긴 인천일보 신문을 들고 찾아와 표구를 청하는 손님이 심심치 않다는 것이다.

여러 봉사단체에 기부해 온 부부는 "더 많이 베푸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는다.

/글·사진=김봉수기자 (블로그)insman


21년간 시민과 호흡한 향토도서관

화도진도서관, 88년 10월 개관 … 근현대 자료 보고

21년간 인천 시민 곁에 머물며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내적 성장을 추구해온' 도서관.
조미수호조약 체결지 화도진지를 복원한 화도진공원에 인접해 문을 연 화도진 도서관은 인천일보와 동갑내기다.

1988년 7월 인천일보가 창간하고 석달뒤인 10월에 화도진 도서관이 개관했다.

이곳은 21년간 '향토 도서관'이라는 이름표가 따라 다니고 있다. 일반 도서관과 다르게 인천지역의 향토 자료와 개항자료를 수집하고 발굴해 오면서 쌓아온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며 인천의 문화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도진 도서관은 이런 사업 덕에 지난 2000년 (구)문화관광부로부터 특화 도서관으로 지정됐고 이듬해에 향토·개항 문화자료관을 도서관 2층에 열게 됐다.

자료관에는 일반논문 520종과 비디오·CD-ROM·DVD자료 59종, 고서 27권 등 총 5천932종 7천438권의 자료가 소장돼 있다. 도서관은 향토역사사진전, 향토역사연구회 등과 같은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한편 향토역사기행, 일일향토교실을 운영하며 인천 시민과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또 인천항 개항기인 180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역 자료와 산재돼 있는 향토 자료를 수집해 근대·현대·교육·신문 부문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료관에는 1990년대 초기 '국민학교'학생들이 치뤘던 시험의 시험지가 전시돼 있는 등 인천 시민들의 소소한 모습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2005년 한국도서관장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한 화도진 도서관은 현재 3개의 열람실에 1천2석의 열람석을 두고 있어 도서를 이용하거나 공부를 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천일보와 경인일보 등 인천지역신문을 창간호부터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장지혜기자 (블로그)jjh


인천서 꿈·희망 이루고 있죠

중국서 유학온 쉔유핑·린창영


"인천에서 새로운 희망과 꿈을 일구고 있답니다."

경인여자대학 중국인 유학생인 쉔유핑(여·호텔경영과 1년)과 린창영(국제교육원)은 21살 동갑내기다.

나란히 인천에 있는 경인여대 캠퍼스에서 한국의 문화와 학문을 익히며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쉔유핑은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출신. 중국동포 어머니와 한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녀가 인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의 미래 비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국제도시 인천의 호텔리어가 되는 게 그녀 꿈.


쉔유핑은 "최근 인천국제공항 근처 베스트 웨스턴 프레미엄 호텔에서 현장실습도 했다"며 "꿈을 실현할 날이 머잖은 것 같아 설렌다"고 말한다. 린창영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출신. 그의 목표는 경인여대 졸업 뒤 시립인천대학교로 편입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고향에서 한국 기업인들을 지켜보면서 한국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어서 인천 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하단다.


인천에 처음 온 그가 가장 놀랐던 일 가운데 하나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많은 외국인들과 마주친다는 것. 린창영은 "언젠가 서툰 한국말로 길을 물었는데 상대방이 능숙한 중국어로 '너 중국 사람이지? 나도 중국 사람이야'라고 답해 깜짝 놀랐다"며 "인천이 국제도시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전한다.

/글·사진=윤지윤기자 (블로그)yjy


기쁨·슬픔 함께한 잉꼬부부
인천일보 21주년 부부인연 21주년

1988년 8월 21일 인천의 한 예식장.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터울의 신랑 이건수(52) 씨와 신부 여봉순(48) 씨가 식장에 들어섰다.

선선해지면 혼례를 치르기로 했지만 그 해 가을 열린 88 서울올림픽을 피해 한여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4년 만에 이들 부부는 전세살이에서 벗어나 인천시 서구 신현동 20평짜리 아담한 주공아파트를 장만해 입주한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집이 생겼다는 설레임에 부부는 네 살배기 아들과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의 행복을 시셈한 것일까. 1997년 외환 위기 여파가 부부에게도 미쳤다. 결혼 전부터 한국타이어에서 근무해 오던 남편 이 씨는 40대 초반 나이에 직장에서 명예퇴직해야 했다.

10살 아들과 이제 막 입을 떼기 시작한 딸이 있었다. 한 두 해는 퇴직금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더 이상 놀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씨는 서구 가정동에 작은 자동차 관련 점포를 내고 가장으로서 열심히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아내 여 씨 역시 결혼 전 가전제품 업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동차부품 검사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부부는 "21년 동안 동고동락해 오면서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서로를 격려하면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지키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어 "부부의 연을 맺은 우리와 동갑내기인 인천일보의 창간 2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덕담도 잊지 않는다.
 
/소유리기자 (블로그)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