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5만 원 권 새 지폐가 곧 나온다고 한다. 국내 최초로 여성 초상이 들어간 지폐라는 점 때문에 도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발권기관인 한국은행은 애초의 안을 그대로 밀어붙여 조폐공사에서 한창 인쇄중이라고 한다.

인천 출신으로 조선왕조 최후의 어용화사로 활동했던 이당 김은호의 신사임당상은 그의 친일 전력 때문에 퇴짜 맞았고, 이당의 제자인 이종상 화백이 새로 그린 초상은 평범하고 속되다며 문중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의 살아생전 모습을 본 이가 생존해 있을 리 없고, 그녀의 초상을 그려 남긴 화사도 없는 마당에 아무 근거도 없는 상상화(想像畵)를 소위 '국가 표준 영정'으로 당당하게 정한 것부터가 황당한 일로 보인다.

더구나 지폐 뒷면에는 조선 중기의 화가 어몽룡의 월매도와 이정의 풍죽도가 실려 있는데 누구의 구상인지 새 디자인이랍시며 두 작가의 그림을 겹쳐서 가로로 눕히고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달의 위치를 옮겨놓아 충격이다.

화폐는 최첨단 기술과 참신한 디자인을 구사해 역사와 문화적 상징을 좁은 공간에 섬세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5만 원 권은 이렇듯 하급의 문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그나저나 문제는 아무도 못 말리는 국가 권력이다. 분명한 오류가 있다면 마땅히 그를 시정해야 하나 어용(御用)들을 동원해 공청회 따위를 열어 논리를 만들어 낸 다음 막무가내 식 행정적 폭력을 저지르기 일쑤다. 대학 설립자, 소설가, 과학자 등을 초상으로 택하고 있는 일본을 곁눈질이라도 해서 배워야겠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