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美서 기적같은 흥행 … 한국선 7위 그쳐
2달 여 전의 <체인질링>에 이어 지난 주 선보인 <그랜 토리노>로 다시금 우리를 찾은 노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흔히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결코 수사나 허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는 '리빙 레전드'다. 그 외에도 물론 세계 영화계에는 전설들이 현존한다.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 최고령 감독 마노엘 데 올리비에라를 비롯해, 장-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 프랑스 누벨 바그 주역들이 당장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모두 미스터 이스트우드처럼 80줄을 바라보거나 그 이상이다. 가령 올리비에라 옹은 101세며, 로메르 옹도 90줄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현역이란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 현역들 중 하지만, 클린트처럼 60대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며 그 전보다 더 왕성하면서도 일취월장의 활동을 펼친 이는 없다. 단지 그들만이 아니라,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도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전설'인 셈이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변되는 일련의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름 없는 건맨'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해, 1970년대의 그 악명 높은 '더티 해리'를 거쳐,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윌리엄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의 프랭키, 그리고 <그랜 토리노>의 월터 코발스키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행보에는 그 어떤 세상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드라마틱한 여정이 내포되어 있다. 무한 감동을 수반한, 끊임없는 성장과 성숙, 변모, 진화의 여정이.

<그랜 토리노>를 보는 것은 따라서 그저 한 편의 화제작을 감상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비록 노거장의 최고작은 아닐지언정, 그것은 50여 년에 걸친 영화인생의 완결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트가 연기한 코발스키 캐릭터는 영락없이 '황야/석양의 무법자'나 '더티 해리'의 '노인 버전'인 것이다.

영화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70대 노인과, 그 이웃에 사는 몽족 10대 소년 및 그 가족과의 우정, 연대를 그 어떤 '잘 만든'(wellmade) 코미디를 능가하는 짙은 페이소스와 유머, 호흡 등으로 극화했다. 그로써 걸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버금가는 큰 감동과 재미를 만끽시켜준다. 흥미로운 점은 예상키 힘든, 결말부의 '숭고한' 선택을 통해 그 동안 자신이 구축해 놓은 신화적 이미지를 해체시킨다는 것이다. 새삼 그 위대함을 환시키면서.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에서 고작 6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영화가 올 2월 초 3천여 개로까지 늘어나면서, 3월 중순 기준으로 북미 지역에서만 1억5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대박을 터뜨린 것은 영화의 그런 덕목들 덕일 터. 언뜻 <워낭소리>의 기적이 연상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유감스럽게도. 130여 개 스크린에서 선보인 영화는 개봉 첫 주말, 고작 6만3천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면서 박스 오피스 7위에 그친 것. 관객들의 취향 차요 문화 차이 탓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랜 토리노>와 <워낭소리> 사이의 그 커다란 괴리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