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결산 상장기업이 올해 사상최대에 달하는 12조8천억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이고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벤처기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는 소식이 세밑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남들이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고 있는 뒷전에서 생존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일단의 「문제아」 그룹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고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일에 그치지 않고 금융계, 나아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엄연한 현실에 이르면 연초의 긴장감이 되살아난다.

 은행·투신·증권·보험·종금 등 국내 금융계 전체가 34조9천억원의 채권을 이미 안고 있고 여기에 조만간 31조2천억원을 추가하게 될 대우 12개 계열사를 포함한 79개 워크아웃 기업(주채무계열 41개사·중견대기업 38개사)이 바로 그들이다.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지금은 어느 정도 마무리돼가고 있는데 비해 비슷한 규모의 잠재부실을 처리하기 위한 기업구조조정은 시행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시행착오속에 시작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연쇄부도로 인한 대량실업의 위기에 몰려 허겁지겁 워크아웃이란 이름을 붙여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했던 불가피한 측면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냉정한 시각으로 살릴 기업과 퇴출시킬 기업을 분별하고 살릴 기업은 확실히 살리기 위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다행히 일부이기는 하나 자구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함으로써 기업과 채권단 모두 부실화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곳도 있다.

 단기차입금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설비투자에 나섰다 환율이 치솟고 업황마저 돌아서 98년 회계연도 1천5백80억원의 적자에 빠져버린 아남반도체.

 채권단과 아남반도체는 지난 2월 워크아웃 약정을 맺고 대대적인 구조조정계획을 짰다. 채권단은 차입금중 2천5백억원을 출자로 전환하고 5백억원의 신규자금을 넣는 한편 남은 차입금은 원리금상환을 미뤘다.

 대신 아남반도체는 자구계획 약속대로 광주공장을 미국의 ATI사에 5억7천만달러에 넘기고 산전사업본부도 4백50억원에 프랑스 르그랑사에 매각하는 등 과잉설비 해소에 나섰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전체 임직원의 26%를 감축하는 고용조정도 감수해야 했다.

 이와함께 뜻하지 않게 다가온 반도체 호황이 아남반도체의 자구계획 이행과 경영실적 달성을 도왔다. 지난 7월에는 반도체 생산실적이 창사 이래 최대에 달하는 등 주문이 폭주했다.

 결국 올 상반기에 1천3백여억원의 순이익을 올린데 이어 워크아웃 첫해에 흑자전환의 과업달성을 앞두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 정성광 차장은 『반도체 업황이 크게 좋아진 측면도 있지만 자산매각 계획을 성실히 이행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남반도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 대다수 워크아웃 기업들은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돼 기업과 금융의 연쇄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79개 기업의 경우 지난 1~9월중 영업이익이 목표의 절반 정도인 53.1%에 그치고 있다. 특히 6~64개 계열 워크아웃 기업중 37개 기업은 오히려 경상적자폭이 확대됐다.

 자구계획도 워크아웃 기간(3~5년)중 목표의 34.2%에 불과하다. 물론 워크아웃기간내에 자구계획을 달성하면 되나 자구계획이 대부분 워크아웃 초기연도에 집중돼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자구계획 이행이 순조롭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 지속으로 인해 부동산 등 자산매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채무보증 및 고용문제 등으로 계열사 정리가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급기야 채권단은 동아건설·고합·진도·우방·갑을·신호·신원·동국무역 등을 포함해 10개 계열에 대해 2차 채무조정을 서두르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놔둬서는 워크아웃 도중에 기업이 쓰러져버려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둘러 마련한 워크아웃 플랜이라 엉성했던 탓도 컸다.

 이와함께 채권단은 차제에 성공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기업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더 큰 손실을 부르기 전에 정리한다는 방침아래 현재 부실기업을 고르고 있다.

 비록 첫단추를 잘못 낀 측면이 있으나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있기에 향후기업구조조정 및 금융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전망을 다소 희망적으로 만드는 대목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