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 재벌이 당면했던 최대의 과제는 뭐니뭐니해도 『부채비율 200% 맞추기』였다.

 작년 4월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거론하기 시작한 부채비율 200% 이하 축소는 재벌과 주채권은행의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명문화돼 기업 생사의 잣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부채비율을 맞추기위해 재벌들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합병하는 등 몸집을 줄여야 했다. 재벌 개혁을 위한 정부의 모든 정책적 노력이 부채비율 감축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재벌들"게 부채를 줄이라는 압력은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정부와 시장이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정부는 재벌들이 부채를 줄이지않으면 『나라가 다시 한번 죽는다』고 배수진을 쳤고 외국투자자를 비롯한 시장참가자들은 부채가 많은 재벌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결국 재벌들은 국내외의 압력을 견디지못하고 백기를 들었고 해방 이후 계속됐던 재벌의 차입경영행태는 막을 내렸다.

 차입경영시대의 종말을 알린 가장 극적인 사건은 『슈퍼 대마(大馬)』였던 대우그룹과 김우중 회장의 몰락이었다.

 대우는 한국적 차입경영의 상징이었다. 다른 재벌들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순응, 열심히 부채를 줄이고 있을 때 대우는 『세계경영』 『수출입국』을 외『며 외형을 불렸다. 걸핏하면 정부의 부채감축 정책에 딴지를 걸었다.

 『다운사이징』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거부한 대가는 컸다. 국"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내고 유사이래 최대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라는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운명을 맞게 됐다.

 부채 60조원이 고스란히 부실화해 금융구조조정을 다시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삼성차 법정관리 역시 과다한 차입경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은행들은 사업전망 등은 전혀 챙기지도 않은 채 이건희 회장의 차에 대한 애정과 삼성이라는 간판만 보고 금고문을 활짝 열어줬다.

 대우를 제외한 4대 재벌은 무차별 증자로 직접금융시장의 자금을 독식했다는 비난은 듣고 있으나 외자유치, 계열사정리 등을 통해 연말 부채비율 200% 달성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4대 재벌의 부채는 작년말 1백65조2천억원에서 연말에는 1백35조3천억원으로 떨어지게 된다. 1년새 30조원 정도의 부채를 줄이는 셈이다.

 4대 재벌이건 그 이하 재벌이건 은행돈을 차입한다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어려워졌다. 동일인·동일계열 여신한도나 거액신용공여한도에 묶인데다 은행에 새로운 자산건전성분류기준(FLC)이 도입되면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의 설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한보 기아 대우사태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를 겪으면서 은행들도 그룹 간판만 보고 돈을 내주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공적자금지원을 받아 부실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합병, 조직감축 등의 구조조정으로 제일 서울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은 임직원의 30~50%가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당연히 은행의 대출관행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출의 부실화를 막기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에 대한 거액 대출을 행장 독단이나 행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사회에서 결정했으나 지금은 행장의 발언권이 배제되거나 약화된 여신위원회나 경영위원회에서 하도록 돼 있다.

"과거에 천대받던 여신심사역들이 지금은 기업심사나 대출 결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외환은행 이연수 기업금융본부장(이사)은 『과거 1~2년 사이 은행의 기업 여신 관행은 엄청나게 변화했으며 현재의 흐름이 향후 2~3년 정도 다져지면 부실발생이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4대 그룹을 포함한 상당수 재벌들이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맞춘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10월 금감위에 대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지만 연말 부채비율 200%는 상호출자지분이 감안되지 않은 것이어서 실제 부채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 평균 40%에 달하는 상호출자지분은 실질적인 외부자본 유입이 아닌 "공자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작성되는 결합재무제표에서는 자기자본에서 제외돼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4대 재벌의 실질 부채비율은 150%에서 최고 300%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비주력 사업 매각 등 실질적인 구조조정없이 2금융권과 직접금융시장의 자금 독식으로 부채비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연합〉

 4대 재벌은 올들어 지난달말까지 증시를 통해 15조7천1백86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작년보다 292%나 늘어난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증시 활황을 타고 몰려든 개미군단의 투자자금을 긁어모아 부채비율을 낮췄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