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글·사진=황규광 동양탄소고문
▲ '발리엠 계곡 축제'가 열리고 있는 와메나에서는 이곳 주민들이 원시부족들의 전투를 재연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남자들은 알몸에 국부에만 코데카를 꽂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도롱이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남녀 모두 얼굴과 몸에 여러 가지 칠을 하고 코에는 동물의 뼈를 꽂은 사람도 있다.




2008년 8월 08일(금, 제13일)
이번 여행은 오늘이 13일째이니 절반은 넘어섰다. 늘 그렇지만 처음에는 날짜가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가 일정의 절반이 넘어가면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오전 6시 55분, 경유지인 뉴기니 섬의 남단, 티미카(Timika)에 착륙했다. 뉴기니 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연합군의 격전지였던 곳이다. 시차가 1시간 있어 이곳은 우리나라와 같은 시간대다. 이대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우리나라에 도착할 것이다. 밤새, 반다 해(Banda Sea) 상공을 동쪽으로 날아왔다. '티미카'에서는 기내에서 1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이륙했다.

오전 8시 45분, 뉴기니 섬의 서북쪽 해안에 있는 자야푸라(Jayapura) 공항에 착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5월, 연합군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내렸던 공항이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군이 뉴기니 섬을 점령하고 해안에 병력을 배치했으나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1944년4월 26일, 홀란디아(지금의 자야푸라)를 점령했다. 뉴기니 섬의 동경 141도선을 국경으로 하고 동쪽은 파푸아뉴기니아(독립국)이다. 자야푸라는 국경에서 불과 22㎞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국경의 서쪽은 인도네시아 영토로 이리안자야(Irian Jaya)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파푸아 주(州)가 되었다. 이곳에 오려면「surat jaran」이라는 입경허가서를 받아야 하기에 자와 섬을 여행하고 있을 때 현지여행사가 입경허가를 받아 며칠 전 미리 항공기편으로 이곳에 보냈다. 공항밖에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구경나와 있는데,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본 인도네시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기온은 28℃로 그리 덥지 않다.

당초 계획은 오전 9시에 떠나는 경비행기를 갈아타고 밀림 속의 와메나(Wamena)로 가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안내방송도 없고 도대체 언제 떠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1시간 후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스콜(squall)이다. 이것이 열대우림기후의 특징인 스콜로 콩을 뿌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갑자기 쏟아졌다. 오늘 오후에 '와메나'에서 열리고 있는 '발리엠 계곡 축제'를 보기로 되어 있는데 걱정이다. 이번 스콜은 요전의 또바 호수로 갈 때와 달리 30분간이나 내렸다. 대합실에 기다리는 승객 중에서 맨발의 남자를 보았다. 비록 맨발이지만 비행기는 탄다. 나는 평생 처음 맨발로 비행기를 타는 광경을 목격했다.

2시간 반이나 기다린 끝에 오전 11시 10분, 자야푸라 공항을 이륙했다. 이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의 기내 앞쪽 1/2은 화물칸으로 쓰고 뒤쪽에만 승객이 탈 수 있는 좌석이 60석이 있다. 자야푸라와 와메나를 연결하는 도로가 아직 없고 '와메나'에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심지어 계란까지도 이 비행기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발리엠(Baliem) 분지의 와메나(Wamena) 공항(해발1590m)에는 35분 만에 착륙했다. 발리 섬의 덴파사르 공항을 오전 2시 40분에 이륙하고 8시간 5분만이다. 정말 먼 곳에 왔다. 발리엠 분지는 설악산의 대청봉(1708m)과 거의 같은 높이이다. 이곳은 고도가 높으므로 말라리아모기가 없어 발리엠 분지의 인구는 문명사회와 접촉하기 이전인 옛날(70년 전)에도 5만 명이나 살고 있었다. 땅은 비옥하여 주로 근채류(根菜類)를 심고 있으며 특히 고구마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와메나 근교에서 오늘부터 4일간 '발리엠 계곡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기에 재빨리 점심식사를 마치고 먼저 와메나 시장에 갔다. 이곳 시장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는데 유독 한 남자만이 홀랑 벗고 국부에만 코데카(페니스 케이스)를 꽂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일행 중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쫓아와서 돈을 달라고 끈질기게 조른다. 나중에 얼마든지 코데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공항이나 길에서는 이런 사람 사진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일이 벌어졌다. 돈을 조금 주고 겨우 떼어버렸다.

'발리엠 계곡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해발1685m)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원시부족들의 전투를 흉내 내어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알몸에 국부에만 코데카를 꽂고 있을 뿐이다. 여자들은 목걸이와 같은 것을 수십 개 허리에 걸치거나 풀로 만든 짧은 도롱이를 허리에 두르고 유방은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남녀 모두 얼굴과 몸에 여러 가지 칠을 하고 머리에는 새의 깃털을 꽂아 멋을 내고 코에는 동물의 뼈를 꽂은 사람도 있다.

이들의 무기는 활(활촉도 나무)과 창인데 창은 단단하고 긴 나무창이다. 내일은 발리엠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도 석기시대의 생활을 하고 있는 원시부족 다니 족(族)을 만난다.

어제 밤에는 밤새도록 비행기에서 지냈으므로 오늘은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화장실에 휴지도 없고 물도 안 나온다.


● 인도네시아의 스콜

적도부근에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마트라 섬, 칼리만탄 섬 등 주요 섬의 한복판을 적도가 지나가고 있다. 따라서 평균기온이 18℃이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이곳의 기온은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크다. 매우 덥지는 않으나 무덥다. 이곳은 저기압의 적도무풍대여서 바람은 일정하며 아침저녁 산들바람이 불어준다.
해가 뜨자마자 기온은 급격하게 올라가서 열기로 상승기류가 맹렬하게 발생한다. 오후에는 적란운이 발생하고 스콜(squall)이 내리며 번개도 친다. 이것이 열대우림기후이다. 우리나라의 비는 처음에 조금씩 내리다가 점점 본격적으로 뿌린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와 같이 내릴 때도 있으나, 스콜은 콩을 뿌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갑자기 쏟아진다.
비가 오면 뛰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무도 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