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기우는 먼 고개치를 바라보며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체부가 잘 와야 사흘에 한 번밖에는 더 들르지 않는 줄을 저라고 모를리 없고 그리고 어제 다녀 갔으니 모레나 오는 줄은 번연히 알련마는 그래도 이쁜이는 산길에 속는 사람 같이 저 산비탈로 꼬불꼬불 돌아나간 기나긴 산길에서 금시 체부가 보일듯 싶었는지 해가 아주 넘어가고 날이 어둡도록 지루하게도 이렇게 속달게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김유정의 단편 『산골』의 마지막 부분이다. 서울 간 도련님으로부터 답장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산골 소녀의 애타는 심정이 그려져 있다. 이제건 저제건 산골에선 체부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만큼 사람에 주려 산다. 체부는 오늘의 집배원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칭하지 못하고 우체부니 배달부니 하는데 이것도 속히 고쳐야 할 옛 찌꺼기이다.

 바깥 물정을 달리 접할 길 없는 산골에서 집배원은 지금도 반기는 손님이다. 특별나게 환대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집배원이 오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긴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산골에 집배원은 의당 딴 세상 사람이다. 그들은 우편배달만이 아니라 더러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들려주고 잔심부름에 노인 수발도 마다 않는다. 이런 사연은 TV 등을 통해 종종 방영되고 있거니와 일전에는 호수 주변 마을을 보트로 누비는 한 집배원이 소개된 일도 있다.

 집배원의 수고는 대도시라고 해서 덜하지 않다. 오히려 육체적으로 더 고달플 수도 있다. 이제 웬만한 연락은 전신전화가 맡고 있지만 정보화사회의 문서나 홍보물 홍수로 업무가 벅차다. 선거철과 요즘 같은 연말에는 특히 더하다. 미로와도 같은 달동네 골목길에다 문패없는 집들을 찾아 다니느라 더욱 피곤하다. 그래서 한때 이직률이 높았던 적도 있었다.

 본보의 인천우체국 홍일점 집배원의 사연이 독자들을 흐뭇케 한다. 올해로 집배원 생활 18년째인 그녀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요즘 『사랑을 배달한다』는 생각으로 특근도 마다하지 않는단다. 곳곳에 숨어 일하는 그들로 인해 거대사회는 부드럽게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