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에서 ▧
지역활동가들이 즐겨 쓰는 말 중 하나가 '지역사랑'이다. 정치인은 출마변으로, 행정가는 각종 개발사업의 전개이유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늘 '위민(爲民)'을 들먹인다. 그렇지만 그 말의 진정성은 대개 위기상황에서 드러난다. 지난주에 있었던 두개의 사안이 대표적인 예다.

인천지역 21개 시민단체들은 GM대우차 사주기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자치단체와 경제단체가 오래 전부터 벌여 왔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참가단체의 면면을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진보단체들은 평소 다국적기업의 국내진출에 거부감을 표출해 온 터라 이 운동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당수가 참가하고 있었다.

GM대우가 부평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지난 외환위기 때 경험한 터였는데, 10년만에 다시 기우뚱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행정기관이 미온적이니 평소 소신을 접고라도 위민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엔 이런 일도 있었다. 현재 시가 추진 중인 대형개발사업 중 민간투자사업은 물경 80건에 108조가 넘는다. 문제는 금융위기 탓에 자금줄이 막혀 대부분이 차질을 빚고 있고, 방치했다간 재정파탄이 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대형사업을 가장 많이 벌이고 있는 경제청 책임자는 시의회 행정감사에서 우려섞인 질문에 "잘 모른다. 검토하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아 질타를 받았다. 기자들이 전한 다른 시 고위층의 전언도 다를 바 없다. 사업 차질여부를 묻는 질문에 많은 부서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부서책임자에게 권한을 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본인이 모든 걸 다하겠다는 현 시장의 스타일로서는 공직사회가 스스로 움직이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반응이었다.

위기 때 이렇듯 공무원들이 손 놓고 있는 형국이니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상황과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단체장의 잘못이 없지 않을 것이다. 각종 사업이 다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을 자랑하고 다닌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고위공무원들 역시 잘 나갈 때는 외부의 우려에 재갈을 물려가면서까지 시정의 우수성을 떠벌리고 다녔고, 자신들만이 지역사랑을 하고 있는 듯 말해 오지 않았던가.

위민을 위해 평소의 소신을 접고 GM대우차 사주기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선 시민단체, 문제가 불거지자 남 탓하기에 급급한 공무원, 이들에게 '사형감 운운'하며 극단적인 발언도 불사하고 있는 단체장, 경제난 속에서 벌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정작 시민들에게 사형감을 고르라면 과연 그 대상은 누가될까 되묻고 싶다.
 
/김홍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