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개봉 2주째인 지난 주말에도 국내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김주혁 손예진 주상욱 주·조연, 정윤수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이번 주에야 봤다. 영화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솔직히는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오후의 나른함이 주는 피곤 탓이 크겠지만, 어느 대목에서는 졸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재미있다. 적잖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더런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퍽 유쾌하다.

내 요지는 영화가 2006년, 1억원 고료의 (제2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박현욱의 동명 원작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원작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다. 완전히 매혹당해, 단숨에.

소설에 부재하는 영상과 사운드 등이 덧입혀졌는데도 왜 영화에서 더, 크고 작은 결여들이 느껴진 걸까. 꽤 괜찮은 배우들이 주, 조연으로 출연했고 신나는 음악들이 내내 귀를 잡아끌거늘.

그것은 무엇보다 문학과 영화라는 매체 고유의 차이 때문일 공산이 크다. 활자 매체인 문학의 감상·수용에서 결정적 작용을 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반면 영상 매체인 영화는 캐스팅, 표현의 한계 등 숱한 텍스트 내·외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는 따라서 소설 독자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충족시킬 그 무엇들을 구비, 제공해야만 한다. 단지 이야기에서만이 아니라 시·청각 등 영화의 모든 층위에서.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먹은 것처럼 쉽겠는가. 원작을 각색한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기 힘든 주된 이유다.

원작을 읽었던 읽지 않았건 간에,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비교를 면할 길이 없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발칙한 소설은,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 지독히 도발적이요 파격적이다. 소설 속 아내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의 주인공 미실 못잖다. 다름 아닌 그 도발성·파격성이 소설을 끌어가는 추동력이다. 영화는 어떤가? 여로 모로 도발·파격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다소 튀는 정도다. 소설을 읽은 관객들에겐 특히나 더.

시각 층위에 시선을 고정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거의 아무런 자극·통찰을 안겨주지 못한다. 밋밋하기 짝이 없다. 극중 화자인 주인공 덕훈 캐릭터에 대한 이해·해석이 피상적이다. 그 역을 소화한 김주혁의 연기 또한 평범하다. 또 다른 남자/남편인 재경·주상욱은 비중이 너무 적어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긴 무리다. 제법 '쿨'한 캐릭터요 그에 걸맞는 연기를 선보이긴 하나 말이다.

영화의 으뜸 흡인력은 치명적 매혹을 뿜어내는 인아 역의 손예진에서 비롯된다. 비록 <미인도>의 김민선 같은 헌신적 몸의 열연을 펼치진 않더라도, 그 자연스러운 표정 하나만으로도 압도적 감흥을 영화에 불어넣는다. '손예진의 발견'이라 한들 과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발견만으로 족할까?

아닐 듯. 결국 영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 셈이다. 2주 연속 흥행 1위라는데도 1백만 고지를 힘겹게 넘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