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이번 주 화요일 저녁, 2008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여덟 돌을 맞이한다는 이 영화제는 지난 2006년까지는 전주시민영화제란 이름으로 열렸던 아주 작고 소박한 축제다. 올해는 31일까지 4일 간 전주 메가박스에서 "함께 해요 독립영화"라는 슬로건 아래, 개막작 <궤도>를 포함한 장편 4편과 온고을 섹션 등 단편 29편, 총 33편을 선보인다.

칸, 베를린, 베니스는 물론 부산, 전주, 부천 등 도시 명을 내건 몇몇 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영화제를 사유·판단하곤 하는 분들에겐 그것도 영화제일까, 싶은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외연만으로 치자면 지당한 의문이다. "작고 소박"하다 못해 너무나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개막 당일 개막식과 개막작 상영, 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개막 파티로 이어진 축제 첫날을 '함께'한 이들은 그러나, 주최 측이건 손님이건 모두, 사뭇 즐거워했다. 그 초라한 규모 따위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당당하게조차 비쳤다. 그래, 아름다웠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기도 한 송하진 전주 시장이 동참해 축사를 보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송시장은 격식 차리지 않은, 자유로운 인사말을 통해 영화제에 진심 어린 성원을 보냈다. 개막작의 극중 여주인공 향숙을 연기한 장소연양은 대개의 여느 연기자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성의를 보였다. 그는 공동 프로듀서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과 더불어, 개인적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재중동포 김광호 감독의 몫까지 충실히 해냈다. 조촐한 파티 자리에까지도 동참해 늦게까지 남아 함께 한 이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관객과의 대화 때는 여느 영화제에서 좀처럼 목격할 수 없었던 가슴 뭉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두 팔 없는 남자와 벙어리 여인 사이의 가슴 시린 러브 스토리인 개막작 상영에 맞춰 열 명 남짓한 장애인들이 입장해 영화를 관람하고, 대화 시간에 그들 중 두 명이 어눌한 말투로 힘겹게 질문하기도 했다. 그 모든 상황들이 독립영화제이기에 가능했을 법했다.

흔히들 우리나라엔 영화제들이 지나치게 많아 문제라고 한다. 적잖은 영화제들이 소모적이기 십상이며, 때문에 상당수는 마치 정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들을 하곤 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때로는 그런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타의 반 자의 반 참석하게 된 이번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식은 그러한 관점들이 얼마나 피상적이며 자의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8천만원도 채 되지 않는 소박한 예산으로 그처럼 뜻 깊은 축제·소통·교류의 장을 연출하는 것을 무의미한 행사로 치부하고 넘어가선 결코 안 될 터여서다.

이번 영화제의 꽃인 온고을 섹션에서는 47편 가운데 선택되어 '지역경쟁'이란 타이틀로 자웅을 겨루는 10편의 단편들과, 중증장애인지역생활센터 장애인들이 제작한 5편의 단편들이 관객들과 조우한다. 그들은 이른바 '지역영화' 및 '또 다른 영화'의 가능성을 탐색·제시하는 소중한 계기들이다. 더 나아가 한국영화의 어떤 미래일 수도 있다. 비록 초라하다고는 하나 그들에게 피땀 흘려 빚어낸 창작물들을 선보일 기회를 마련해주는 '장'을 어찌 소모적이라 마구 재단하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