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 - 역사 속 여주이야기 '여주8경'
문화가 숨쉬는 고장 여주. 여주는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의 쌀농사가 시작된 곳이며 겨레의 성군 세종대왕과 북벌의 웅지를 품었던 효종대왕, 조선조 학자 목은 이색, 우암 송시열,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얼이 깃든곳이다.

여주에는 선사시대 유물은 물론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보 및 천연기념물등 71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지역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많은 구릉지와 하천부지가 형섬됨으로써 농업이 발달되어 대한민국 최고쌀인 여주쌀을 생산하고 있다.

여주는 우리나라의 역사의 보고(寶庫)이다. 국가지정 문화재와 지역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특히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지정4호)를 비롯해 원종대사 혜진탑 등 20여점의 보물들이 보존돼 있다. 세종대왕릉.효종대왕릉 등 3곳이 사적지로 지정됐고, 북내면 신접리 285 지역의 백로.왜가리 번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대신면 보통리 190-2 김영구 가옥이 민속자료로, 목아박물관의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러한 역사적 보고인 여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남한강변은 우리나라 강들 중에 가장 경치가 수려한 절경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지금은 아쉽게도 '양섬의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양도낙안)'등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강변에는 그 자태가 그대로 숨쉬고 있다.

■신륵모종(神勒暮鍾)
'남한강변에 위치한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신륵사는 여주군·읍 천송리에 위치한 전통사찰로,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봉미산(鳳尾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절 앞으로는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한 자태로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신륵(神勒)이라는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신기한 미륵(혹은 나옹선사, 혹은 인당대사)이 신기한 굴레(勒)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고 전한다.
신륵사가 유명해진 시기는 고려 말부터이며, 1376년(고려 우왕 2)에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종 원년(1469), 본래 경기도 광주 대모산에 있던 세종의 영릉을 여주군으로 천장하면서 신륵사의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로 바꾸게 하고 세종대왕릉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마암어등(馬巖漁燈)
'마암 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여주읍 상리, 영월루 바로 아래의 절벽 바위는 예로부터 '마암'이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곳이다.
여주를 대표하는 관성(貫姓) 중의 하나인 여흥 민씨는 마암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 하여, 이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다.
또 신라 경덕왕 때 마암 바위 아래의 푸른 물결에서 황룡마와 여룡마(검은 용마)가 출현하여 고을 이름을 황려현(黃驪縣)으로 고쳤다고 하니, 가히 여주를 대표할 만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평한 바위면을 골라 '마암(馬巖)'이라고 세로로 크게 써서, 배를 타고 오가던 행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으나, 지금은 관리소홀로 잡풀이 무성한 실정이다.
마암 글씨의 위쪽과 좌측에서 각각 '이인응(李寅應)'과 '…시월(十月) 일각(日刻)'이, 그리고 우측의 또 다른 바위에서 '신현태(申鉉泰)'라는 글씨가 확인되고 있으며, 전후사정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학동모연(鶴洞暮煙)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학동은 오학리 학동과 현암리 학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옛날에 많은 학들이 이 고장에 와서 쉬었다 하여 학동이라 불린다.


 

■연탄귀범(燕灘歸帆)
'제비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남한강 양섬 앞으로 제비여울(燕子灘:연자탄)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물살이 매우 빠른 곳으로 옛날에는 여주팔경중 하나를 차지했다.
임진란 때 제비여울 전투가 치러진 곳이 이곳이다.


■양도낙안(洋島落雁)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양도(羊島)는 여주읍 하리의 아랫동네 북쪽 한강 가운데 있는 섬이다.
조선시대 가축방목지로 이용되었던 섬으로 훗날 양을 길렀다고 하여 양섬이라고 한다.
원래는 벌섬인데 벋은섬으로 변하고 다시 버들섬으로 변하여 일시 양섬(楊島)이라 하다가 현재 이름 양섬(羊島)으로 쓰이게 되었다.


 

■팔수장림(八藪長林)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팔대숲은 현암리의 수촌(남한강 옆에 있는 부락) 앞에 있는 숲이다.
길이가 7리가 되어 바다 같다 하며, 여주 팔경의 하나이다. 정조대왕 때 벌채가 이루어져 농경지로 개간돼,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릉두견(二陵杜鵑)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영릉(英陵, 사적 제195호)은 능서면 왕대리의 세종대왕릉이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世宗)과 그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합장릉(合葬陵)이다.
1469년(예종 1)에 결국 한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여주 서쪽의 북성산(北城山)으로 천릉(遷陵)하였다.
녕릉(寧陵, 사적 제195호)은 조선의 제17대 왕인 효종(孝宗)과 그 왕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의 쌍릉(雙陵)이다. 1659년(효종 10) 건원릉(健元陵)의 서쪽 능선에 병풍석을 갖춰 모셨으나, 1673년(현종 14)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영릉(英陵)의 동쪽 홍제동(弘濟洞)으로 천장(遷葬)하였다.



■파사과우(婆娑過雨)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파사산성(婆娑山城, 사적 제251호)은 대신면 천서리와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의 경계에 있는 파사산(婆娑山, 해발 230.5m)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발달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국시대 이래의 석축 산성이다.
성곽의 전체 둘레는 935.5m이며, 현존하는 성벽의 최대 높이는 6.25m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여주=김광섭기자 blog.itimes.co.kr/gskim /사진제공=여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