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 환갑 축하 달맞이 굿 만신 김금화
"굿은 민족의 눈물·한풀이
종합예술 '잔치 승화' 염원"


"굿은 신명나는 잔치고 눈물겨운 한풀이지. 굿 구경 한 번 못해 본 사람들은 굿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건 굿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만신 김금화(77)는 누가 굿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신령의 환갑을 축하할 겸 정월 대보름날인 21일 강화도 하점면 신봉리 금화당에서 달맞이 축제를 펼쳤다. 이어 오는 5월7일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7월에는 몽골에서 굿 공연을 갖는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이 내린듯, 동네 사람들의 가정사 등을 쪽집게처럼 알아맞히는 기운이 있었다.

"열일곱살 때였던가. 그날도 여느해처럼 달맞이하러 들에 나갔지. 솔가지가 타들어가면 그걸 잡고 달을 향해 나이만큼 절한 후에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를 뛰어넘는 놀이야."

그가 17번 뛰어 넘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웅하는 소리가 나고 별이 우수수 떨어진 것이다.

"떨어지는 별을 피하려고 맨발로 논두렁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개천을 건너다 정신을 잃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신 내린 거였어."

무당으로서 평탄치 않은 삶을 산 그에게 '1982년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공연'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최초의 해외공연이다.

"우리 행색이 초라했는지 한국 주최 측에서 무대에 안 세우려고 했지 뭐야. 그런데 우리를 그 곳까지 안내해 준 조자용 선생이 절대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며 우리를 무대에 세웠어. 관객들은 점점 돌아가고 무대는 반 정도 치운 상태에서 올라가 정신이 없었지. 난생 처음 외국인 앞에서 하는 공연이라 어찌나 떨리던지.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 알아 줄 거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굿을 했는데 나중에 눈 떠보니 돌아가던 관객들이 모두 돌아와 6천석이 빽빽하게 찼더라고. 어찌나 감정이 북받치던지."

그 공연은 훗날 그를 '서해안 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능보유자'로 만들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근처 경희대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앞으로 굿을 종합예술로 승화시키고 민속박물관을 지어 굿을 널리 알리는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말하는 만신 김금화에 대해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렇게 표현했다.

"무는 우리 민족의 풍류를 일컬음이다. 무(巫)는 무(舞)와 통하는데 춤이란 본시 몸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추지 못하는 것이다."

/정보라기자 blog.itimes.co.kr/j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