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살아가야하는 인간의 '행동 지침서'
맹자는 천하 만물과 오래된 것은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삼국지연의의 바람을 타고 번져갔다. 그리하여 '무릇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지는 법이다.'는 개념을 정립한다.

삼국지연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러한 순환론적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천 팔백년이 지난 오늘도 삼국지의 인기는 시들지 않는다.

경영학에서부터 처세술, 리더십, 외교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의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도 쉬지 않고 새로운 분야의 삼국지 문화를 일궈내고 있다.

삼국지가 이토록 오랫동안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난세를 살아가야하는 인간의 행동지침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소설은 유비와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정통론에 근거한다. 촉한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장치이다.

충성, 믿음, 의리, 덕망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데 유용할 뿐더러 중국대륙을 차지한 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논리로도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촉한정통론은 한족의 기질과 역사적 소망 그리고 대륙적 통일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숙독하면 중국인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삼국지는 최근 중국에서도 광풍처럼 인기가 높다. 그리고 그 열풍은 예전과 다르다. 올해 팔월,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되어서만도 아니다. 중국경제는 개혁 개방주의 이후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엄청난 경제력으로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바야흐로 7~8세기에 구가했던 실크로드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분구필합(分久必合)의 정신은 중원을 넘어선 지 오래이며, 또한 영토개념 없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앞과 뒤에 삼국지연의가 있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쟁투, 그것이 역사다. 이러한 쟁투는 각기의 소망을 담는다. 하지만 역사는 무뚝뚝하여 소망이나 가정을 필요치 않는다. 또한 소망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소망하는' 역사란 인간의 사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천하의 모든 민족에게 골고루 기회를 준다. 천하는 개인이나 한 민족의 것이 아닌 공물(公物)이기 때문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영원히 차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 천하를 다 가지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욕망에 오늘도 사로잡혀 있다. 인간의 천성적 기질이 개인일 경우에는 공자의 편이지만, 집단일 경우에는 순자의 편을 들기 때문인가.

인간사 시비성패 부질없는 것
청산만 예전 그대로 있으니
탁배기 한 병으로 반갑게 마주 앉아
동서고금 이야기로 밤새 웃어나 보자.

흥망성쇠의 변주도 결국은 자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의 욕심과 사고도 자연 속에 있는 것이니 천하가 공물이되 그 주인 역시 자연인 것이다.

한고조가 칼을 들고 함양으로 들어오니
이글이글 붉은 해가 부상에서 솟아났네
광무제가 일어나서 대통을 이루었고
금빛 까마귀는 중천으로 날아올랐네

슬프다! 헌제가 나라를 이어 받자
붉은 해가 서쪽 함지로 떨어지네
하진이 무모하여 환관 난리 일어나고
양주의 동탁이 조정을 차지했네

왕윤이 계책을 세워
역적들 목을 벴으나
이각과 곽사가 창 칼 들고 일어났네
사방의 도적들이 개미 떼같이 모여들고
천하의 간웅들도 매처럼 날아오르네

손견과 손책은 강동에서 일어나고
원소와 원술은 하량에서 일어났네
유언 부자는 파촉 땅을 점거했고
유표는 군사를 형양에 주둔했네

장릉과 장로는 남정을 제패했고
마등과 한수는 서량을 차지했네
도겸과 장수와 공손찬 역시
영웅임을 뽐내며 한 지방씩 점거했네

조조는 승상부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문무 영재들 모아 신하로 이용했네
천자를 떨게 하고 제후들을 호령하며
용맹한 장수들 거느리고 중원 땅을 진압했네

누상촌의 현덕은 본래가 황실 후손
관우 장비와 의를 맺고
임금 보좌하려 했는데
동서로 뛰어다녀도
발판 삼을 땅이 없어
몇 안 되는 군사들과
정처없이 떠돌았네

남양의 삼고초려 어찌 그리 정 깊은가
와룡은 한 번 보고 천하를 나누더니
형주 먼저 취한 후 서천을 차지하라네
패업의 왕도는 촉 땅에 있었네

오호라! 3년 만에 선주가 승하하며
백제성서 탁고하자 억지로 슬픔 참고
공명은 여섯 번씩 기산으로 출정하니
한 손으로 천수를 보전하려 함이었네

역수가 거기서 끝날 줄 어찌 알았으랴
한 밤중에 혜성이 산골짜기로 떨어졌네
강유는 혼자서 높은 기력 과시하며
아홉 번이나 중원 치느라
헛수고만 하였구나

종회와 등애가 두 갈래로 들어오니
한나라의 강산은
위나라의 것이 되었네
조비 조예 조방 조모 거쳐
조환에 이르렀는데
사마씨가 또 천하를 내놓으라고 하네

수선대 앞에서는 운무가 일어나고
석두성 밑에서는 파도가 일지 않네
진류왕과 귀명후
그리고 안락공이 된 것은
왕후공작의 근원을 따른 것이네

분분한 세상사는 끝없이 계속되고
망망한 천수는 피해갈 수가 없구나
삼분천하 갈라진 일
이미 꿈이 되었는데
후세 사람 부질없이
불평만 늘어놓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