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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위태로운 도시다. 폭탄과 다름없는 위험시설이 넘쳐나고, 폐기물을 날리는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도심을 질주한다. 나쁜 것은 최고, 좋은 것은 최저를 기록한 연구보고서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마약, 섹스, 폭력'의 도시라는 비아냥까지 내뱉는다. '성냥공장'으로 시작된 공단의 역사는 인천의 대기와 하천을 잿빛으로 물들인 지 이미 오래다.

이쯤되면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정주인구는 점점 늘어 조만간 부산을 앞지를 전망이다. 왜 그럴까. 집 값이 싸서? 서울과 가까워서? 그런 변인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런 부정적 이미지의 대척점에 '인천만의 색조'가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눈부신 빛기둥은 인천이 아니면 안되는 자연과 역사다. 바다를 포옹한 천혜의 풍광과 미추홀의 유구한 역사. 이 두 주체는 인천의 어둠을 밝혀주며 도시를 지탱하는 커다란 축으로 생생하게 실존하고 있다.

청록, 카키, 블루, 인천의 바다는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하며 시선을 유혹한다. 물비늘이 반짝이는 황해는 사계절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엘도라도 같은 신비로운 섬들은 인천의 자랑이며, 생명이 펄펄 살아숨쉬는 광활한 갯벌과 단군왕검이 내려온 명산 또한 인천의 유산이다.

자유공원에서 근대건축물거리, 차이나타운으로 이어지는 중구 지역은 강화도와 더불어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배다리는 어떤가.

배다리 지역은 인천사람들에게 매우 각별한 신화가 움튼 곳이다. 반 세기 가깝게 한 자리를 지내온 헌책방들, 군복은 물론 총알까지 살 수 있었다던 양키시장, 선조들의 예술혼이 살아숨쉬는 전통공예상가… 덜컹대는 전철 밑으로 펼쳐진 배다리의 고색창연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엔 인천의 대표적 문화예술단체들까지 속속 합류하는 상황이다.

인천시 계획대로 이 아름다운 곳을 공룡의 발자국 같은 산업도로가 짓뭉개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인천시민의 꿈과 희망을 짓밟겠다는 소리와 다름아니다.

지난 10일 열릴 예정이던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도로개설공사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것은 인천시민들의 밑바닥 정서가 어떤 지 잘 보여준 사례다. 회의 예정시간이던 오후 3시 전부터 주민들은 출입문을 봉쇄했고, 시 관계자들은 마침내 설명회를 포기해야 했다.

시민들의 반대가 이처럼 거센 데도 시는 산업도로 계획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강경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째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의견을 수렴해 사업을 추진하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거스르는 걸까.
많은 이들은 인천에서 개발할 지역이 한 두 곳이 아닌데 이번에 밀리면 큰일난다 라든지, 특정한 사업자와 번복할 수 없는 계약을 마쳤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배다리산업도로 역할을 할 '제2외곽순환도로'가 건설되므로 배다리산업도로는 이미 명분이 사라진 상황이다.

정말 필요한 사업은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훨씬 더 잘 아는 법이다. 책상 위에서 도면 한 장 달랑 펴 놓은 채 자 대고 줄 하나 쭉 긋듯이 사업을 결정하는 시정부와는 마인드부터 다르다.

정주민과 인천시민은 당장 보이는 경제적 이익보다 수백 년을 넘나드는 '삶의 진정성'과 '인천만의 문화향기'를 소망하기에 산업도로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21세기가 무분별한 경제개발시대가 아니라 고품격 문화의 시대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단지 오래도록 배다리에서 행복하게 먹고 살았고, 배다리를 지나다니며 고향의 풍경을 가슴 깊이 간직한 인천인으로 성장해왔을 뿐이다.

배다리는 정주민의 삶터인 것은 물론, 인천시민 모두의 공간이자 인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시는 명분 없는 도로계획을 철회해야한다. 정 필요하다면 '우회도로'와 같은, 배다리 한 가운데를 흉칙하게 두 동강 내지 않는 다른 묘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다.
 
/김진국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