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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해도 지금은 '문화'의 세기다. '문화경영'이란 용어가 더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문화는 우리 일상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이 시대 중심축이 문화이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분야는 단연 '영화'다.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예술영화와 할리우드를 랜드마크로 하는 블록버스터의 대치 구도를 통한 세계적 영화발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다.

우리나라 영화의 도약은 88년 올림픽 전후, 비디오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부터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영화시장에 뛰어들었고 10년 뒤 '국민의 정부'는 거액의 영화진흥기금을 조성, 영화인들이 앞 길을 터 주었다. 부산·부천판타스틱과 같은 국제영화제와, 전세계적으로 활동 중인 300개 이상의 영상위원회(Film Commission)가 폭죽 터지듯 발족하기 시작한 때도 이 즈음이다.

인천에서도 지난해 '영상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어 '어린이영화제'를 추진했지만 "집행위원장으로 내정했던 장미희씨가 직책을 고사했다"며 문화 마인드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찾아보면 위원장감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수장이 중요하지만, 조직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일이관지. 영상산업을 비롯, 문화행정에 있어 시가 시민들의 눈총을 받는 것은 다른 지역을 어설프게 '흉내'내거나 '구색 갖추기' 식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마인드'와 '진정성'이 부족한 데다, 시민공론화의 부재, 비전문가로의 사업위탁 등으로 좀처럼 결실을 못 거두고 있는 것이다.

6억 원을 들여 복원했다는 '제물포구락부'를 보자. 개항기, 제국주의자들의 사교장을 사랑이 피어난 낭만의 장소로 희화화한 것은 사관의 차이라고 치자. 그러나 경인철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당시 실존했던 '우각'역 대신 몇 년 전 생긴 '소사'역을 넣은 것에 대해선 뭐라고 할 것인가. 이 하나만 봐도 '대충' 만들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추어들의 작품"이라는 혹평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경찰서에 접수된 작은 사건이 사회 전체 현상을 보여주듯 '각국공원(현 자유공원) 창조적 복원사업'에 대해 지역민심이 흉흉한 것은 제물포구락부처럼 역사·교육·경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충'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낸 세금 277억원이 들어간다고 해서 무작정 반대할 만큼 인천시민들이 단순하다고 보면 오해다. 수천억원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인천문화재단 설립의 예처럼 정말 필요한 사업에 대해선 두 팔 걷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인천시민들이다.

그러나 시는 말이 없다. 결과는 어떻게 되든, 일단 자체적으로 결정한 사업에 대해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그렇듯 안하무인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시민들의 저항이 어떻게 발현하는가는 '배다리 산업도로'사업에서 잘 드러났다.

시는 '신개발주의적 방침'으로 배다리 문화지역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시계획을 추진해 왔다. 계획대로 밀어붙인다면 배다리지역은 두 동강으로 잘라져, 영화학교와 같은 100년이 넘은 유형문화재가 파괴되고, 고서점·양조장과 같은 인천의 명물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화·역사적 입장보다는 생활터전으로 삼는 정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기 싫다"고 읍소했지만 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인천작가회의, 스페이스 빔 등 인천의 문화단체들이 배다리로 속속 이전하며 온몸으로 반대하자 현재 추진을 잠시 중단한 상태다.

시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식견과 역사·책임 의식없이 엉성하고 미심쩍은 문화정책을 추진한다면 백이면 백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앙상블처럼, 인천의 문화는 시민들과 시당국이 '앙상블'을 이뤄야 비로소 만개할 수 있다.

오만하지 않은, 시민들에 말에 귀기울이는 그런 겸손하고 상식적인 시정부를 갖고 싶다.
 
/김진국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