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김치(金緻)라는 안동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이 감사에까지 이르렀다. 한때 중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이름난 점술가를 찾은 일이 있었다.
"내 운수가 어떠하겠소?" 점술가가 대수롭지 않게 종이에 두 줄 글을 적어주기에 받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산기우객 두대일지화(花山騎牛客 頭戴一枝花) : 꽃핀 산중에 소를 탄 나그네요, 머리에 한 송이 꽃을 이었도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가르키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소이다" "알 날이 올 것이오" 점술가는 더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 후에 김치는 안동부사가 되었다. 안동부사로 있을 적에 심한 학질을 앓았는데, 그 후로 걸핏하면 학질을 앓아서 좋다는 약은 모두 먹어보았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이렇게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소를 타고 다니면 학질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김치는 소를 타고 이 고을 저 고을로 구경을 다녀 보았다. 소를 타고 다니니 풍류도 좋고, 마침 봄철이라 산에는 꽃이 만발하여 구경거리가 그럴 듯 하였다. 그러나 김치는 또 심한 학질에 걸려 이름 모를 고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고을의 원님은 약을 달여 주고, 기생을 시켜 병구완을 하여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치는 끙끙 앓다가 이마가 선뜻하여 눈을 떠보니 한 기생이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마를 짚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기생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일지화(一枝花)입니다. 한 가지의 꽃이라는 뜻이 옵니다." "허!" 김치는 기가 막혔다. 언젠가 중국 땅에서 점술가가 써 준 글귀가 생각난 것이다. 과연 자기는 소를 타고 산천경계를 구경하겠다고 나섰으니 꽃동산에 소를 탄 나그네요, 지금 일지화라는 이름의 기생이 이마를 짚어보고 있으니 머리에 한 가지 꽃을 인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후유… 언젠가 알 날이 올 것이라고 하더니…, 그 글귀는 결국 내 죽을 날을 가르쳐 준 것이었구나."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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