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워싱턴·뉴욕·방콕·파리·베를린=연합】 『질의라기보다는 의원 개인의 철학 강연에 지나지 않아요』 『의원들이 기분풀이나 하는 자리죠』 『현지사정도 파악못한 채 앵무새처럼 질의서만 읽어내리는 국감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올해 해외국감 현장에서 터져나온 피감기관 직원들의 볼멘 목소리들이다.

 한마디로 국정감사 무용론들이다. 국내 국감현장이라고 이러한 비판들이 없을리 만무하지만 해외 현장의 경우 좀 더 노골적인 게 사실이다.

 이런 식이라면 매년 비싼 항공료와 숙식비를 낭비하면서 똑같은 해외출장 국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재외공관 국감의 현주소에 다름 아니다.

 우선 의원들의 무성의로 대충 때우면서 서둘러 넘어간 현장들이 눈에 띈다.

 파리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대표부에 대한 감사는 대표부 개설후 첫 감사임에도 오전 10시20분에 시작돼 오후 1시50분쯤 3시간30분만에 서둘러 끝낸 인상을 주었다.

 특히 국민회의 정희경의원은 답변을 하는 양수길대사에게 점심시간이 늦었음을 들어 빨리 끝내도록 권유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주미대사관에 대한 이틀째 감사도 오전 10시가 넘어 시작돼 11시40분쯤 1시간반 만에 졸속으로 끝났다.

 이처럼 성의가 없다보니 감사현장에 제때 도착하지 않거나 아예 빠진 의원들도 있었다.

 여야간 일정다툼으로 한쪽이 퇴장하는 「반쪽」국감 추태도 이어졌다.

 주태국대사관(대사·김국진) 감사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중도 퇴장, 야당 의원들로만 진행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국민회의 간사인 김상우의원이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행사일정에 맞추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다』고 제동을 걸면서 시작된 여야간 입씨름은 결국 대사의 업무현황 보고만 듣고 여당의원들이 퇴장함에 따라 야당 의원들만으로 진행됐다.

 사전 준비가 없다보니 주요 사안에 대한 알맹이 있는 감사가 이뤄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주미대사관 감사에서는 노근리 사건은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사안으로 대미 접촉 창구인 주미대사관의 역할이 중차대함에도 한 번 짚고 넘어가는데 그쳤다.

 피감기관의 업무와는 동떨어진 당략에 치우친듯한 질의도 여전했다.

 주일 한국대사관 국감에서 한나라당 이신범의원은 국감과는 관계없이 국내 중앙일보 홍석현사장이 탈세혐의로 구속된데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현황에 관한 자료를 대사관측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업무분장도 모른 채 엉뚱한 질문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OECD대표부에 대한 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수한 의원은 OECD 본연의 임무와는 상관없는 인권문제, 특히 북한의 인권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유엔대표부에 대한 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중국내 탈북자 처리에 대해 유엔대표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이에 이시영대사는 탈북자 문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있는 제네바주재 대표부의 소관사항으로 뉴욕의 유엔본부에는 난민문제와 관련해 접촉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지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난민문제를 다루는 UNHCR의 명칭에 유엔이 들어가니까 당연히 유엔대표부의 업무로 알고 형식적인 질의를 준비했다 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읽어내려 간 것이다.

 한술 더 떠 주독일 대사관에 대한 감사에서 한나라당의 오세응의원은 독일대사관 업무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민주평통자문위원 선정의 문제점에 대해 길게 설명하며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의원들이 사전에 대사관측에 어떠한 답변자료도 요청하지 않았으며 사전 질문서도 작성하지 않았어요』라는 한 대사관직원의 따끔한 지적은 주마간산식으로 진행되는 해외 국감 무용론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