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찬 편집부국장
한국의 정치적 지지시장은 배타적(排他的)이다. 지역과 이념, 세대가 만든 이 시장은 비정(非情)하다. 정치인과 제(諸) 정치세력은 이 앞에서 초라해 진다. 존경은 없다. 권위도 없다. 시장에 반(反)하는 자는 퇴출과 몰락을 당할 뿐이다. 이중 지역시장은 극단적이다. 영남과 호남이 언제 지지자를 바꾼 적이 있었던가?
이념(理念) 시장도 매섭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역시장은 말 그대로 지역에 국한한다. 이념은 전국적이다. 특히 이념시장의 반응은 광기에 가깝다(politics of insanity). 2004년의 총선과 2006년의 지방선거는 이성(理性)이 없는 선거다. 보수의 비리와 진보의 무능이 각각의 역풍(逆風)을 만들었다. 인물론은 무기력하다. 정치 엘리트의 줄지은 낙마는 이념시장의 파워를 상징 한다.
이번에는 정치적 지지시장의 유동성(流動性)을 보자. 지역시장은 견고하다. 시장의 경계는 지도위로 고정돼 있다. 배타성이 상품이다. 반(反)시장을 표방하면 바로 레드카드다. 한 두 번 더 선거를 치러도 별로 변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념과 세대시장은 유동적이다. 또 두 시장은 자주 결합한다. 이 곳에서는 헤게모니가 중요하다. 붉은악마와 촛불시위가 2002년 대선의 분위기를 결정했다. 탄핵반대 열풍이 2004년 총선을 구획했다. 2006년 지방선거는 50, 60세대가 정치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한 결과이다. 한때 정치적 연합체였던 20, 30세대의 분화와 20세대의 보수화가 신조류로 나타났다. 386은 외로워졌다.
한미 FTA가 타결됐다. 제(諸)정치세력의 셈법은 복잡하다. 그것은 FTA가 이념, 세대 등 유동적 정치시장을 고정화하는 폭발성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념의 유동성은 사라지고, FTA를 찬성하면 보수, 반대하면 진보로 고정되는 조짐이 있다.
세대별 풍향은 아직 모른다. 다만 앞으로 촛불시위등이 잦아지면 젊음의 감성이 이념과 결합할 수 있다.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지지시장의 반응에 정치인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천정배와 김근태 의원 등은 이미 반(反)FTA의 선봉에 섰다. 4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FTA 반대 시국회의도 생겼다. 인천일보가 인천 출신 국회의원의 FTA 찬반을 물었다.(4월2일 1면 보도) 이분들의 대체적인 답은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 비준과정에서 협약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조건을 내세웠다. 찬반이 엇갈리는 국회비준의 핵심은 정치적 지지시장의 헤게모니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김근태 의원은 "FTA를 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까지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받아 그를 밟고 가겠다는 인사도 있다. 국회 비준을 놓고 "이제 전쟁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한·미FTA를 놓고 그간의 찬반 논란은 교조적 이념시장으로 진화(進化)하는 측면이 있다. 반대론자들은 '실익 전무론'을 말했다. 망국론으로까지 번졌다. 찬성론자들은 경제대국인 미국과의 경쟁에서 국민의 저력을 강조했다. 경쟁력 강화를 통한 궁극적 승리를 말했다. 그러나 공허했다. 정산(精算)을 할 때다. 찬성론자들은 쇠고기 값 인하를 갖고 국민을 유혹하지 마라. 그 뒤에는 축산농가의 비명이 있다. 취약부문의 구조조정이 있다. 반대론자들은 자동차와 섬유 등 수출증대 효과를 일방적으로 폄하하지마라.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는 부문이 있다. FTA는 명(明)과 암(暗)이 있다.
한미 FTA 국회비준의 기준은 국익이다. 헤게모니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국익을 외면한 채 정치적 지지시장의 눈치를 보는 것은 비겁하다. 난 국회의원들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고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 아래에서 바뀔 것이 있겠는가? 한국의 미래, 당신들에게 달렸다./박흥찬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