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이야기]살라리 별곡(3)

홍순민/ 국사학 박사/ 명지대 객원교수 그러한 계양산이 이제는 계양구만의 주산이 되었다. 지금 계양구는

정확히 계양산 자락인 셈이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북쪽의 둑실동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갈산동, 오류동, 이화동, 장기동,

선주지동, 노오지동, 평동, 상야동, 하야동, 귤현동, 동양동, 박촌동,

병방동, 임학동, 용종동, 서운동, 작전동, 효성동이 산자락 끝에 마치

그물의 추처럼 달려 있고 그 안 산골에 목상동, 다남동, 방축동, 계산동

등이 들어앉아 있다. 아니 이렇게 행정동 이름을 다는 것은 깊은 맛이

나질 않는다.  무슨 무슨 골, 무슨 무슨 말, 무슨 무슨 재, 무슨 무슨

뫼, 무슨 무슨 리를 붙여야 한다. 범어골, 바래벌, 배곶이, 벌말, 아랫말,

큰말, 굴재, 당뫼, 이막골, 넘말, 용마루, 살라리, 도두머리, 까치말,

새별이, 갈개, 된밭, 그리고 읍내, 얼마나 정겨운가. 갑자기 마을과

마을들이 서로 소근소근 정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리며, 그 안에사는

사람들이 옛 친구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런데 근자에 계산동 살라리 마을을 구획정리 사업을 하면서 그 지구

이름을 살라리라고 하는 것이 혐오스러우니 동네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다. 왜냐하면 살나리는 이곳이 사형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였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이다.

 이러한 주장은 아마 조기준 선생의 부평사 연구(富平史硏究)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위 책에는 한글로 「 살나리」

한자로 「 殺拿里」라고 쓰면서, 옛날 이곳이 부평에서

서울가는 길인데 옛 계양도호부때 이 근처, 정확하게는 마을에서 서쪽으로

좀 올라간 계산천변에 사형장이 있어서 옛 노인들이 고사를 생각해서 이런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위 저자의 추측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러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 뚜렷한 주장이 아니고

저자 자신이 언급했다시피 전설적 차원의 추측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도 자칫 훗날에 가서는 바로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굳어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속설적 추측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이 참에 내

고향 살라리 동네 이름의 뜻을 밝게 드러내 딴 소리가 없게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