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이 기 꺾고자 활싸움 제안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서된 사람의 묘이니 왕릉처럼 규모가 크고 웅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여흥 민씨 문중에서만 왕후가 9명이 배출되었다. 그러니 세도와 권력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능현리 어귀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민유중의 묘는 민씨 문중에서 대대로 관리해 왔고, 그 가계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태어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민유중의 능과 명성황후 생가로 인해 동네 이름이 능현리(陵現里)라고 불려졌던 것이고.
"창진이한테는 절대로 질 수 없어."

나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며 활을 만들었다. 우선 황학산 사람바위를 향해 절을 하고, 마을 뒤의 송곳바위에 올라가 기원을 했다. 그리고 고려 때 장군이 무예를 닦고 입신출세를 했다는 멍석바위 신령에게 빌었다. 이 산에서 명궁에 쓰일 나무를 찾게 해달라고. 그 덕분에 나는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아주 곧고 단단한 참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창진이 코를 납작하게 만들 찬스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고 단단한 참나무를 찾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올곧은 참나무를 베어다가 잔가지를 치고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양쪽 끝에 홈을 파고 비비선을 걸었다. 물론 참나무의 탄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구부릴 때 불에 굽기까지 했다.
다음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민유중의 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창진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이제 활쏘기 게임을 시작하자."
"좋아."
창진이도 지지 않고 큰소리로 대꾸했다. 나는 창진이가 들고 있는 대나무 활을 보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창진이가 만든 대나무 활은 크고 우람했지만, 어딘가 엉성하고 조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가 들고 있는 싸리나무 화살은 투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본래 싸리나무 화살은 무겁고 탄력이 적어서 잘 쓰지 않았다. 물론 힘을 제대로 받으면 멀리 날아갈 수 있지만,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그런 탄력을 만들 수가 없는 게 싸리나무 화살이었다.
"활 좋다."
"네 활도 멋있어 보이는데."
"그래?"
"그렇잖아. 참나무 활이니까."
"하긴 참나무 활이 대나무보단 탄성이 더 좋지."
"을지문덕도 대나무 활을 사용해서 이긴 거 알아?"
창진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진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가 을지문덕이라면 나는 이순신이다."
"이순신? 네가?"
"네가 을지문덕이라니까."
"우리… 말씨름 하러 온 건 아니겠지?"
"그야 그렇지."
"그럼 활쏘기를 승부를 가르자."
"진작 그럴 것이지."
"지금부터 활쏘기를 시작하는 거다."
창진이는 이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것은, 내 활이 창진이 활보다 훨씬 탄탄하고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활줄을 만든 소재도 창진이와 내가 판이하게 달랐다. 즉 창진이는 나일론 끈을 여러겹 꼬아서 활줄을 만들었고, 나는 비비선을 팽팽하게 당겨 활에 걸었다. 그러니 내가 안심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네가 먼저 쏴."
나는 창진이에게 먼저 쏠 것을 주문했다.
"네가 먼저 시작해."
창진이가 턱으로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먼저 쏴서 상대의 기를 꺾어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제154회>글 최인 그림 송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