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 등 잊혀졌던 사실 시대적 사명감 "
이원규는 국내 최초로 조선의용대 유적지를
발굴했고 김정일 유모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항일 독립투사 김산의 일대기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가 이원규의 '김산 평전'(실천문학사)이 역사·인물 평전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원규는 무려 10년 동안 20회에 걸쳐 중국 만주와 연해주, 연안 일대를 직접 답사하며 역사 속에 묻혀있던 우리나라 항일 독립전쟁사와 독립투사들을 새롭게 발굴 조명해왔으며 인천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분단소설을 써 온 작가다. '김산 평전'은 방대한 고증자료와 현장 답사, 작가의 장중한 문체가 어우러져 우리 항일독립투쟁사를 새롭게 복원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희환과 함께 작가 이원규로부터 그가 발굴한 우리 항일독립투쟁사를 직접 들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분단소설로 문단에서 입지를 다졌는데 분단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조정래 선생이 "넌 일제 관리 아들이라서 분단소설을 쓸 수 없어" 그러는 거야. 분단에 대해 조 선생과 토론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분단소설을 쓰게 된 기폭제가 조정래 선생이 날 약 올린 거야. 그래서 '포구의 황혼'이라는 단편을 썼어. 조정래 선생이 그걸 받아가지고 앉은 자리에서 전화 온지도 모르고 끝까지 읽었대. 그리고 "너 됐다. 분단소설 됐다. 분단에 관한 단편은 나보다 났다"라고 그랬어. 조정래 선생이 계속 성취 동기를 줬어. 쓰다보니까 평가가 계속 좋았어. 또 인천이 해방공간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곳이니까 파고들어가니까 나올 게 있었거든. 그러면서 박정희가 굴절된 안경을 씌워 고정된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스칼라피오와 브루스커밍스 등의 원전을 보면서 바뀌게 됐어.

-항일독립투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방향을 바꾸는데.
▲신구문화사 이사영 사장이 찾아 왔어. "좌나 우에 기울지 않고 김일성까지 쓸 수 있는 대하소설을 써달라"하며. 그래서 92년 만주를 횡단했어. 그렇게 해서 대하소설 '거룩한 전쟁'을 썼어. 그때 연안, 태항산도 갔어. 거긴 국내에서 내가 처음 갔어. 연안에 갔을 때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지. 그래서 연기했어. 내가 남조선에서 공부하다가 핍박을 받아가지고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그랬지. 그랬더니 통과증을 끊어주더라고. 그렇게 해서 김일성이 싸운 데까지 다 돌아봤어. 약수동 같은데는 지금도 가본 사람이 없어. 약수동은 김일성이 19세에 항일운동을 시작한 곳이야. 약수동에 들어가기 위해 중국옷 입고 들어갔어. 내가 서울말 쓰니까 거기서 게이트볼을 치는 노인들이 남조선에서 나쁜 놈 왔다며 게이트볼로 때리는 거야.
그 뒤로 내가 기자들을 데리고 또 들어갔을 땐 우리 아들왔구나 하고 노인들이 끌어안고 반겨줬지. 내가 책을 제대로 썼으니까. 김일성이 88여단 정찰대장 했던 하바로프스크 70㎞ 북쪽에 김정일이 태어난 집까지 갔어. 김정일 유모도 만났어. 태항산에서는 조선의용대 노인들을 만났는데 내가 죽으면 저승에서 술 한잔씩 사준다고 했지.
당시 우리 역사에는 김무정 지휘소, 조선혁명군정학교 자리 등이 전혀 안 알려졌어. 김무정 지휘소 같은 곳도 사실 내가 다 찾아냈어. 조선의용대나 조선의용군 유적지를 이후에 더 찾은 사람도 있지만 내가 거의 다 찾았어.

-약산 김원봉 평전을 썼는데.
▲어느 출 판사에서 백권의 전기 소설을 출간한다며 내게 청탁이 왔어. 그래서 난 홍범도를 쓰겠다고 했지. 홍범도 싸운 데도 갔거든. 홍범도가 활동했던 만주, 연해주, 봉오동 전투현장도 갔거든. 봉오동에서 군화 버린 것도 보고. 일본군화도 보고 그랬거든. 그런데 송우혜라는 홍범도 전문 작가가 있었어. 그래서 내가 양보하고 약산 김원봉을 쓰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그 출판사는 그거 출판하다가 망했어. 그런데 그 원고를 갖고 있는 걸 실천문학사가 알았어. 원고를 달라는 거야. 그래서 '약산 김원봉'을 먼저 썼지. '약산 김원봉'이 '김산 평전' 보다 더 재밌는데 잘 안 나가더라고. 2쇄 찍고 말았어. 그런데 김원봉이 재밌으니까 실천문학사에서 김산을 출판하자고 하더군.

-조선의용대의 항일 독립투쟁사와 몰락을 밝혀냈는데.
▲김원봉이 스무 살에 의열단을 만들고 의열단으로 조선의용대를 만들었는데 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에서 "무슨 중국 남쪽에서 독립운동이냐" 하며 화북으로 오라고 해서 홍군 쪽으로 갔지. 그런데 중국국민당에서 지원을 해 만든 군댄데 홀랑 홍군 쪽으로 가버리니까 국민당에서 "너희 광복군으로 가" 이런거야. 그래서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이들이 광복군이 싫다며 조선의용군으로 간 거야.
사실 조선의용군이 가장 활발한 항일 전투를 했어. 그리고 이들이 귀국해서 북한 인민군 장성 60%를 차지했고 미귀국자들은 중국공산당 간부로 남았어. 어쨌든 조선의용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전쟁 책임이 있으니까 남쪽에서 조선의용군의 역사를 지워버린 거지. 그러니 조선의용대도 역사에서 지워진거야.
조선의용군 사령관 김무정은 북쪽에서 숙청당했는데, 조선의용군들이 간이 커져가지고 "연안에 있는 우리 동지들이 안 도와줬으면 김일성과 북한은 망했어" 이런 거야. 김두봉 이런 사람들이 김일성에게 간섭했지. 내분에 휩싸인 거지. 그랬더니 소련 부수상 미코얀과 중국 주덕해가 북한에 온 거야. 그리고 걔들이 김일성만한 대안이 없다고 본국에 보고해 김일성이 칼자루를 잡은 거야. 그래서 연안파가 싸그리 숙청당했어. 그때 인천 출신 이승엽도 숙청당했지.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해서 싸웠던 이 사람들이 역사에서 지워진 거야.
당시 그들은 이념보다는 조국 광복을 위해서 싸운 건데 열강들에서 조선을 도와주지 않으니까 아나키스트로 돌 수밖에 없었고 선택이 공산주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데 남과 북 역사에서 지워졌어. 내가 취재를 다니면서 소주를 가지고 다녔어. 이름없이 사라진 독립투사 묘에 소주를 부어주며 잊지않겠다고 했어. 남과 북에서 조선의용대의 역사가 지워지고 그들에 대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내가 주둔지, 전투지역 사진을 찍고 발굴했지. 그때 우리 역사란 뭐냐? 누가 세상에 이걸 드러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때까지 난 작가가 시대의 역사나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빠져들어가 보니 그쪽에 엄청난 자료와 사실이 있는거야. 엄청난 거야 역사의 빈자리가.
/글=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
가 /사진=정선식기자 blog.itimes.co.kr/ss2chung
본보와 계간 작가들 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대담에서 소설가 이원규(좌측)가 작가들
이희환(우측) 주간과 본보기자(가운데)에게 항일독립투쟁 취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 이원규 약력>
▲1947년 인천 출생. 인천고,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1968년 동국대 학술상 창작문학 부문 수상.
▲1970년 백마사단 직할 공수특전대 장거리 정찰대원으로 차출돼 베트남전에 참전.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1986년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 공모에 '훈장과 굴레'로 당선.
▲창작집 '침묵의 섬', '깊고 긴 골짜기', '천사의 날개', '펠리컨의 날개', 장편 '훈장과 굴레', '황해',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전 9권, 독립전쟁현장 답사기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1·2권, '저기 용감한 조선 군인들이 있었소', 평전 '약산 김원봉', '김산 평전' 출간, 대한민국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
▲현재 동국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