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일 인하대학교 경영학부
세계는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과 진보는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선을 밖으로 향하지 못하고 움츠려드는 자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점차 국가 간 장벽이 무너지고 자유무역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 농산물 시장에 대한 포괄적이고 예외 없는 개방을 요구함에 따라 살아남기 위한 우리 '농업의 대변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지난여름 교내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행운을 잡았다.
필자가 뉴질랜드를 방문지로 택한 이유는 그곳에 '제스프리(Zespri)' 본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제스프리는 농민이 100% 지분을 소유한 농산물 전문 마케팅회사로 전체 키위시장의 2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명실 공히 세계 Top 브랜드이다.
하지만 제스프리가 처음부터 지금의 영광을 누렸던 것은 아니다.
1981년, 뉴질랜드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고 농민들의 자주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선포하고, 보조금과 세금 감면혜택 등을 폐지시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키위 수출업체들의 과당 경쟁과 칠레,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경쟁국 출현으로 키위 값은 폭락했고, 재배 농가들은 도산 위기에 몰렸다.
이에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난립하던 수출창구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마케팅과 연구개발(R&D)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창립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스프리사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극복의 주인공이 '정부'가 아닌 '농민 자신'이란 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농가보호수준이 세계 4위이라는 최근의 OECD 보고서는 우리 정부가 농민들의 단기적인 보호에만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자주적 경쟁력을 높이는데 소홀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농민 스스로가 만들어 내기만 하는 '전통적 생산자' 관념에서 벗어나, 효율적 경영방식과 마케팅을 활용한 '전문 경영인'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카멜레온은 환경변화에 맞춰 자신의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나간다. 하지만 카멜레온이 둔감하여 본래의 색깔만을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대는 우리에게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다.
우리 농민들 역시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개발하여 틈새시장을 개척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나주배'가 '제 2의 제스프리'로 거듭나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그 날을 꿈꿔본다./안성일 인하대학교 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