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과수원 사택에 숨어서 지냈다
"이 사람이…"
중사가 눈을 부릅떴다. 나는 허겁지겁 근회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사정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이곳 실정을 잘 몰라서."
"이 사람들이 그냥 보내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만."
"나가면 될 거 아니오." 근회가 투덜거리며 방파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중사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이 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태도 때문인지 중사는 험악했던 인상을 풀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한번 더 훑어보고 어둠 속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근회를 이끌고 길고 긴 방파제를 걸어나왔다. 우리가 당면한 부조리한 현실과 제도를 곱씹어 보면서. 근회가 걸음을 옮기며 투덜거렸다.
"제길, 이 나라에서는 마음 놓고 갈 데가 한 군데도 없구만."
"그러니까 분단국가라는 거지."
"분단 때문에 이러는 거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게 다 군사독재정권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요. 그 덕분에 군부는 더욱 힘을 얻는 거고요."
근회는 울분을 삭이며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나는 어둠에 잠겨 있는 바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차피 삶이라는 것은 제도의 희생물인 것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당대의 제도와 사회상황에 따라 삶의 궤적을 달리한다.
그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에 탄 대중의 모습이다. 대중은 간혹 그가 탄 수레에 깔려 신음을 할 수도 있다. 역사라는 크나큰 수레는 대중을 반드시 태우고 가기만은 하지 않으니까.
나와 근회도 역사의 수레에 올라타기보다는,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약한 대중에 불과하다. 만약 역사의 수레바퀴가 우리 위를 지나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모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수레바퀴 바로 아래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근회는 방파제에서 나와 허름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다시 목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난 광주 어머님 댁에 다녀올 테니까, 선배는 사택에서 지내고 계세요. 모든 건 누이가 알아서 도와줄 테니까요." 근회는 나를 과수원 사택에 남겨 놓고 길을 떠났다.
광주에서 혼자 살고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고 돌아온다며.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과수원 사택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외부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상태에서. 따사로운 봄날의 나른함 속에서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건, 젊은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들으며 하루의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나 그러한 무료함과 따분함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그것은 반찬을 챙겨 가지고 찾아온 근회의 누이 때문이었다. 그때에도 나는 산수유 향과 배꽃 향을 맡으며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내 등 뒤에 서 있는 건 화사한 모습의 근회 누이였다. 그녀는 분홍색 치마에 꽃무늬가 들어간 하늘색 블라우스를 걸치고 있었다. 밝고 청초한 그녀의 모습은 배꽃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반찬을 싸가지고 왔어요. 먹는 게 부실할 것 같아서."
"저는 괜찮은데."
"지내기는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긴요. 편하기만 한데요."
"근회가 저한테 부탁했어요. 손님이 편하게 해 드리라고."
"아,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