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제2사회부장 데스크 칼럼
어법에 맞지 않지만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일테면 '공공연한 비밀'이란 말이 그렇다. 비밀이란 본디 은밀한 것이고 극히 소수만 알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공공연한 비밀'이라니. 이게 어디 말이 되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허다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인데도 '비밀'로 남아 숱한 세월을 견딘다. 특히 뭔가 구린 구석이 있고, 불법과 부패, 부정의 음습한 사연과 혐의를 가진 것들이 그렇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조직적이거나 여럿이 힘을 합쳐 저지르는 경우여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비밀'로 분류된다. '비밀'의 딱지를 떼는 순간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오랜 세월 '비밀 아닌 비밀'로 남아있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듯 불안정한 상태가 그들의 바람대로 영원무궁할 수는 없는 법, 언젠가 올 것은 오고야 만다. 24일 터진 '폭로'가 그렇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경기지역본부안양시지부는 이날 "지난 5·31 지방선거에 출마한 현 신중대 안양시장의 당선을 위해 상당수 안양시 공무원들이 선거운동에 관여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다. 공무원노조는 이와 함께 신 시장을 비롯한 9명의 공직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이번 일은 어느 공무원의 제보로 떠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공무원노조 한 간부는 "자율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은 채 마치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안양시 공직사회 분위기"라고 한다. 제보자 역시 "(동의하지 않더라도)가라면 가야 하는 풍토에 염증이 났고, 이제 이를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판단에서 제보했다"고 전한다.
이들의 주장은 적어도 겉보기에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3선 고지에 오른 '행정의 달인' 앞에 감히 맞설 공직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속사정을 좀 안다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판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신중대 시장을 비롯해 공무원들을 다수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공은 이제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의 수사 결과와 함께 최종 판결은 비단 공직사회 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아울러 법조계의 최종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든 상관없이 이번 사태는 정부와 정치권에 숙제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선거 때면 늘 떠오르는 최대의 쟁점, 즉 '현직 프리미엄'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신중대 시장처럼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현직단체장'이라는 이유로 방대한 공무원 조직을 지휘하면서 '시정활동'을 벌이는 것은 언제나 논란거리다.'일상적 시정활동'과 '예비적 선거운동'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주장했듯 '현직'은 언제나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고, 공직자들은 늘 해당 후보의 당선 뒤 올 수 있는 '불이익'이 두려워 어떤 형태로든 후보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
실제 이런 상황 끝에 법의 심판대에 오른 도내 자치단체장만해도 동두천시장, 양평군수, 가평군수 등 한둘이 아니다.
무릇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현직이든 아니든 선거에 나서는 모든 후보들은 같은 조건에서 같은 출발선에 서 같은 거리를 뛰어야 한다. 차제에 선거제도 역시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도록 크게 달라져야 한다.
'현직시장'과 '예비후보'라는 이중신분은 마치 상대에 비해 두 배의 무기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라는 어느 낙선 후보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재선 3선 고지에 오른 단체장 역시 끊임없이 관권선거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이번 경우가 그렇다.
공무원노조의 이번 집단고발은 그 결말에 관계없이 선거를 더욱 공정하게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말없이 섬기는'공직사회 분위기 혁신에도 약이 될듯하다.
다만 동료를 고발하는데서 오는 부담은 몽땅 노조간부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누군가 그렇게 아픔을 무릅쓰고 '총대'를 메줄 때 역사는 조금씩 진보 쪽으로 더디고 힘겹게나마 이동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