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20일까지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다. 그래 오늘 오후쯤엔 부산행 열차에 올라 있을 게다. 부산에 머무는 7박 8일 동안, 그 어느 해 못잖게 열심히 영화들을 챙겨볼 참이다. 제 아무리 열심히 챙겨봤자 30편도 채 못 넘기겠지만, 이번에는 특히 국적별ㆍ섹션별로 아주 다양한 감독의 영화들을 두루 선택해 볼 참이다. 물론 만남들도 열심히 가질 테고.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를 빌어 어떻게 하면 영화제를 알차게 꾸려 나갈 지 등에 대해 제안하고 싶기도 하다. 그건 그러나 도저히 자신이 없다. 기껏해야 올해 칸 영화제등에서 이미 본 일련의 영화들을 중심으로 몇 편의 개인적 기대작들을 '강추'하는 게 고작일 따름이다. 일찍이 한 중앙 일간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지면에서 난 총 11편을 추천했다.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올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보이는 바람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 '여름 궁전'(감독 로 예)과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최초의 사무라이극", '하나'(이상 '아시아 영화의 창')를 비롯해, 2006 칸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오픈 시네마')과 브루노 뒤몽의 '플랑드르', "흥행과 비평 모두 독일에서 올 상반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타인의 삶'(월드 시네마'), 그리고 올 부산 영화제의 최대 센세이션으로 각광받을 법한, 존 카메론 미첼의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적 섹스 오디세이 '숏버스'와, "괴팍하기 짝이 없는 3대 세 남자의 기괴한 삶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유머로 그려낸", '헝가리의 박찬욱' 기요르기 팔피 감독의 '택시더미아'('미드나잇 패션') 등이 그것들이다.
주최국인 탓에 적잖은 영화들이 포진된 한국 영화로는 '새로운 물결'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되는 '경의선'만을 추천했다. 가능한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끝내 하진 못했지만, 내가 관여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섹션에서 선보이는 늦깎이 신인 서명수 감독의 '나비두더지'도 실은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늘 접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일상을 포착, 묘사하는 감독의 시선이 여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동료 평론가 김영진은 이 섹션에서 선보일 또 다른 한국 영화 '마지막 밥상'과 더불어 그 영화를 "독립영화 진영의 성깔 있는 실험"이라고 진단했다.
위 추천작 목록들은 사실 내가 원한만큼 다양하진 못했다. 원칙적으로 내가 본 영화들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보다 더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작가들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취한 말들의 시간'의 감독 바흐만 고바디의 신작 '반달'이나, 태국이 낳은 영화 신동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등 몇몇 아시아 영화들은 강추하고 싶다. 영화제가 아니면 맛볼 수 없을 강렬한 감흥을 안겨줄 테니까…
/전찬일 (영화평론가/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