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시장의 기소
이필운 안양시 부시장이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됐다. 혐의는 선거법 위반. 지난 5·31전국동시지방선거를 6일 앞두고 석수체육공원과 병목안시민공원 개장행사를 잇달아 열어 당시 한나라당 신중대 안양시장후보 측을 도왔다는 게 이 부시장을 고발한 측의 주장이다. 검찰이 기소했으니 진실이야 법정에서 가려질 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허다한 공직자들은 내심 황망하단 반응을 보인다. 더러 '몸통'은 따로 없는 것인지, 누구 대신 '총대'를 멘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가설을 내놓기도 한다. 필자 역시 궁금하진 매한가지다. 그래도 역시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남겨둘 일이다. 섣부른 예단은 자칫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특정 자치단체에서의 단체장과 부단체장 사이를 새삼 짚어보는 것은 그런대로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신중대 안양시장과 이필운 부시장과의 관계를 들어 '잘못된 만남'과 '잘 된 만남'이란 평가가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엇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상식적 얘기지만 특정 자치단체에서 '직업공무원'인 부자치단체장의 자리는 '선출직' 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위상이 크게 달라지며,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적잖은 자치단체장들은 대부분의 권한을 '행정전문가'인 부단체장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대외적 활동에 치중하기도 한다. 이른바 '내치'는 부단체장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은 '외치'에만 치중하는 괜찮은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치단체장은 도시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거나 굵직한 몇 가지 공약을 제시할 뿐 대부분의 행정은 부단체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선출직 단체장 상당수가 정치인이거나 자치단체 행정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역할분담은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단체장 역시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십분 살려 도시살림을 챙기는 보람을 맛볼 수 있으니, 이런 단체장을 만난 것은 비교적 행운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치단체장 자신이 '행정전문가' 또는 '행정의 달인'임을 자임하고 나서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부단체장은 사실 설 자리가 매우 좁다. 안양시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보는데, 단체장과 부단체장 모두 '자치단체 근무'가 그들이 가져본 직업의 거의 전부다. 두 사람 모두 자치단체 경영에 관한 한 남 못지 않은 내공(?)을 자랑할 만큼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리더십의 유형만 다를 뿐 비슷한 이력을 가진 두 사람이 단체장과 부단체장을 맡고 있으니 상식적 수준에서의 시너지 효과는 그리 기대할 바가 못된다. 더욱이 이미 3선째인 신중대 시장의 '모든 권력은 나로부터 나온다'는 식의 독특한 리더십이 횡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단체장의 선 자리는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다.
물론 신 시장은 외견상 상당 부분의 권한을 부단체장에게 위임한 것으로 내세운다. 그러한 일 대부분이 대강의 틀과 방향 따위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정해진 뒤 실무적 일을 챙기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밖에도 골치 아픈 공무원노조 문제라든지, 고질적인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 등도 이 부시장의 몫으로 종종 넘겨진다. 상황이 이쯤되니 안양시에서 민원인이 시장을 만난다는 일은 '대통령 만나기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거의 정설처럼 나돈다. 그렇다면 결국 부단체장은 악역만 맡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될 법 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종합하면 그럴 수 있겠단 판단에 이른다.
이른바 안양시의 2인자이면서도 단체장의 지침 없이는 무엇 하나 쉽사리 결단할 수 없는 이 부시장. 그런 그가 지난 선거 기간 3선을 위해 출마한 신 시장을 대신해 잠깐 동안 '시장직무대행'을 수행하던 중 뜻밖에 선거법 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당한 것은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름대로 추정은 해보지만 숱한 궁금증이 남는다. 과연 법정은 이 궁금증을 속시원히 밝혀줄 것인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