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진 갈수록 더 젊어지시네요. 이번엔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27일 오전 10시 인천시 계양구 계산2동 계산체육공원안 팔각정에 이색

이발소가 차려졌다.

 폭신한 회전 이발의자 대신 엉덩이만 살짝 걸칠 수 있는 플라스틱

간이의자 몇개와 화장용 손거울이 전부.

 그러나 백발의 손님들은 머리를 깎기위해 기다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발 기계를 담은 검은가방을 들고 1주일이면 두서너번씩 자신들을

찾아주는 「사랑의 이발사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기 때문이다.

 황성갑씨(36·계산동)와 박정상씨(42·서구 당하동).

 이들이 가위와 이발기를 들고 계산체육공원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부터.

 중장비업체 사장에서부터 목욕탕 때밀이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황씨는

어렵사리 마련한 서울 면목동 신발가게조차 장사가 안돼 지난해 10월

쫓겨나다시피 가게를 그만뒀다.

 박씨 역시 지난 97년 서울에서 10년동안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다

배달원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재산 전부를 합의금으로 날렸다.

 곧이은 IMF한파로 이들은 간간이 건설현장 등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백수」>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그러다 이들은 지난해 정부의 직업재훈련을 통해 6개월 과정으로 머리

깎는 기술을 배웠다.

 훈련과정에서 우연히 서로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은 황씨와 박씨는

자신들이 배운 기술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계산공원은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죠, 그래서

용돈없는 노인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이 이 공원입니다. 어려운때 못

사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라며 노인들의 머리를 다듬는

황씨의 가위질 솜씨에는 사랑이 짙게 배어있었다.

 이들 「거리의 이발사」>들이 한번 들를 때마다 머리를

손질해 주는 노인들은 30명정도. 이젠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 주머니에

돈이 없는 젊은 실직자들도 단골이 됐다.

 『노인들의 머리를 깎다보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박씨는 『살아생전 호강 한 번 못시켜드린게

한』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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