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8
 (제92회)
 청년은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사실… 여긴 우리 누이 다방이오. 지금은 비어 있지만.”
 “아, 그랬군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아무튼 여기도 안전한 곳은 아니오. 그러니 조용히 합시다.”
 청년은 이렇게 말하고 내실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말없이 청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청년은 능숙하게 내실의 불을 켜더니 방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몇 마디 투덜거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상처가 심한 것 같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몸을 놀리는 품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쫓기는 몸이었고 부상자였다. 우리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홀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자 청년이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오더라도 문을 열어선 안 됩니다.”
 “……”
 “그리고 놈들이 또 올지 모르니, 불을 꺼요.”
 청년은 명령조로 말했다. 우리는 청년이 말대로 홀 안의 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청년이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들도 쫓기는 것 같은데, 눈을 좀 붙여 둬요. 내일 아침 일찍 여기를 떠나야 되니까.”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청년의 행동도 그렇고, 우리의 처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쫓기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또 청년은 내일 아침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더구나 청년의 품에는 총기까지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청년의 다리를 치료해 주면서 허리춤에 끼여 있는 권총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도 정부 기관에서만 사용하는 45구경 권총을.
 “여기 이불이 있으니 가져다 덮어요.”
 
청년이 내실의 문을 열고 이불을 내놓았다. 아직은 오월이라 밤에는 무척 추웠다. 더구나 유키코는 가벼운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청년이 내준 이불을 끌어다가 유키코의 무릎에 덮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것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녀는 떨고 있는 게 아니라,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흐느낌이 그치기를 기다릴 뿐. 유키코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들었다. 그러나 나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낮선 도시에서 쫓기고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디로 해서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느냐 하는 고민도 또한 아니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나의 내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슬픔 같은 것 때문이었다.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나는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홀은 아직도 어두컴컴했다. 동이 트려면 몇 시간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디선가 어렴풋하게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간간히 총성 비슷한 소리도 뒤섞여 들려왔다. 내가 부스스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여자가 큰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여자를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표정과 행동으로 보아 집주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앉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갈 데가 없어서… 잠시 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죠.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와 잠을 자다니요.”
  “미안합니다.”
 주인 여자와 나의 실랑이를 들었는지 유키코가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주인 여자가 벽쪽으로 다가가 불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