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4
최상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어본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 조선인이라고 말한 여자 입에서 일본식 이름을 듣는 게 묘했다.
“왜, 이상합니까. 최상이?”
“아, 아니요.”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나를 이해시키기보다는, 일본식 습관과 습성이 몸에 밴 재일교포를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여자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배가 고픈데… 어디 가서 식당이나 찾아보죠.”
우리는 불이 꺼진 거리를 한참 걸어갔다. 군데군데 상점 문을 열어놓은 게 보였지만, 대개가 영업을 하지 않았다. 물론 영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와 내가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겁에 질린 시민들은 아예 영업을 포기하고 문을 걸어 잠근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골목 깊숙이 위치한 조그마한 잡화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빵과 우유를 구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이렇게 먹는 것도 맛있네요.”
여자가 빵을 먹다 말고 웃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주 해맑고 투명한 얼굴이었다. 아니, 오월의 저녁노을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붉은 홍조를 띠고 있어서 더욱 신비스럽게 보였다. 나는 붉게 물든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여자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수십 명이 죽었대.”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여기저기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너도나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양키들은 물러가라. 양키들은 물러가라.”
나는 그들의 구호를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들은 진압군이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군복을 입고 우리나라 총을 든. 그런데 군중들은 양키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양키 물러가라고 하는 거죠?”
“글쎄요. 나도 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나가던 학생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게 다 미군이 사주해서 일어나는 거래요.”
“미군이?”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대요.”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와 있으며, 이런 일을 겪고 있느냐를 생각하면서. 여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해맑은 얼굴이 약간은 어두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거리는 이미 어둠에 잠겨갔고, 사람들은 더욱 과격해지고 있었다. 총소리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고 골목을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딘가에 여관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여관이라는 여관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영업을 한다 해도 손님 자체를 받지 않았다. 그것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이면서, 또한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일본인 여자와 서울말을 쓰는 젊은 청년이 어딘가 미심쩍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나는 제대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군인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깜깜한 도시의 뒷골목을 몇 시간동안 헤맨 끝에 겨우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에 위치한, 아주 허름한 삼류 여관이었다. 주인여자는 우리를 향해 수상한 눈초리를 던졌다. 나는 애써 변명을 했다.
 “나는 군인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