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3
 다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여긴 위험하니까.”
내 말에 여자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이런 일이 벌어지나요?”
“이런 일이요?”
“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자를 높다란 담 밑으로 밀어붙였다.
“매일 일어나지는 않아요. 그저 가끔 일어나지만.”
여자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도 한국의 상황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격렬한 데모가 일어난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한국보다 더 과격한 조직인 적군파라는 단체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그 활동을 중단하고 잠잠해 졌지만. 나는 어둑해진 시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숙소는 어느 쪽입니까?”
“숙소요?”
여자가 되물었다.
“머무는 곳 말입니다.”
“아, 그게…”
여자가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떠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N시에 있어요. 여기서 먼 곳에.”
“N시?”
“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N시이라면 지금쯤 계엄군에 의해서 봉쇄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물샐틈없이. 더구나 지금은 닥치는 대로 쏘고 죽이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 여자를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는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저녁 8시면 통행이 금지되어 아무도 돌아다닐 수 없었다. 나는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은 돌아가지 못해요.”
“그럼?”
“우선 이 상황을 모면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쉬었다 가야 한다 이 말입니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다친 무릎을 쓰다듬었다. 무릎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여자의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유키코라고 합니다.”
“유키코?”
나는 허리를 펴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가 말한 유키코라는 이름이 어딘가 어색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 그런데 이름은 일본이었다. 유키코… 나는 여자가 말한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예쁜 이름이네요.”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유키코…”
“댁의 이름은요?”
여자가 내 이름을 물어왔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통성명을 한다는 게 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어차피 만남은 만남이었다.
“나는… 종하라고 합니다. 성은 최씨고요.”
“그럼 최종하?”
“네.”
“이름이 독특하네요.”
여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종하씨보다는 그냥… 최상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네요.”
“최상?”
“네.”
나는 잠시 당황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