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1
  6. 유키코 〔昭和 54年 小滿(1980. 5)〕
 제대 후, 나는 복학을 하느냐 취직을 하느냐로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가 ××시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둘째 삼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삼촌은 다짜고짜 ××시로 내려와 식당 일을 도와줄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삼촌은 여행도 하고 학비도 벌 겸 빨리 내려오라고 성화를 해댔다. 삼촌의 독촉은 의외로 진지하고 간곡했으므로, 나는 하는 수없이 ××시로 내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답답하면 시내 구경이라도 하고 와.”
 삼촌은 가끔 이렇게 말했다. 실상 나도 식당 일은 처음이라서 따분하고 지루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내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어서, 어디를 가거나 구경한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가끔 일이 없는 오전에는 시내 구경을 나갔다.
 “거리에 군일들이 깔려 있어서 좀 그렇지?”
 삼촌은 마치 거리에 군인들이 진주해 있는 게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꾸했으나, 거리를 혼자서 돌아다닌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군인들의 눈빛이나 행동이 이미 평범한 것을 넘어서 살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빛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거리는 살기등등한 군인과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시민들로 꽈 차 있었다. 아무튼 나는 틈만 나면 거리로 나갔는데,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치 아니 대치가 어느 면에서는 재미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민들과 군인들 사이에 돌팔매질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즉 얼마 전에 제대한 나로서는 대열을 이루고 서 있는 군인들이 좀 불쌍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엄연히 제대를 한 민간인이었다.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단 말이야.”
 어느 날 둘째 삼촌은 이렇게 탄식조로 말했다. 나는 삼촌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삼촌은 머지않아 군인과 민간인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나도 그건 느낄 수 있었는데, 거리 곳곳에서 군인과 민간인들이 돌을 던지고 진압봉을 휘두르며 충돌했다. 그것도 유혈이 낭자하게.
 “될 수 있으면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
 “그래도 거리 구경이 좋은데요.”
 “데모가 점점 격렬해지고 있어.”
 “데모대에는 끼지 않을 게요.”
 “어제는 여러 명이 죽었대. 총격전까지 벌어져서”
 “걱정 마세요.”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민군에 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학생시절 데모를 해본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경력이 아니라, 나는 더 이상 학생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와 함께 강제 입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정부 투쟁과 데모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군인들의 행동이 과격해지면 해질수록 시민들 틈에 끼여서 같이 구호를 외쳐댔다. 그것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혈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군인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군인들이라는 게 결국 자신의 의지보다는, 오로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카시아 향이 싱그러운 어느 날, 나는 시민군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대열 속에 끼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어준 붉은 띠를 손에 거머쥐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것은 군인으로서, 군복을 착용하고 지시하는 대로 따르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흥분이었다. 나는 그저 될 테면 되라 하는 식으로 그들과 같이 움직이고 구호를 외쳐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