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해무-20회
 (제84회)
 
 “데모진압 때문에 며칠간 출동해야 돼.”
 “며칠이나요?”
 “한 일주일.”
 “일주일 동안이나요?”
 “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시위가 격렬하다는데.”
 유키코는 무척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나는 유키코를 향해 싱끗 웃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리고 그 며칠 후 우리는 뭍으로 출동했다. 유키코를 넝쿨장미가 빨갛게 핀 섬에 남겨 놓은 채. 아니, 유키코와 배순경 부인이라는 여자를 섬에 남겨 놓은 채. 나는 여객선을 타고 가면서 계속 그녀가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그녀를 언제 어디서 보았으며, 무슨 일 때문에 만났는가를. 그리고는 드디어 그녀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랬다. 그녀는 바로 미스안이라는 여자였다. 광주사태 당시 내게 먹을 것과 음식을 제공해준 여자. 자신이 경영하는 다방에서 나와 유키코를 재워주고 보살펴준 여자. 바로 그 여자였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녀는 내 인생을 급변하게 만들었던 여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내가 근무하던 군부대를 풍비박살 내고 유유히 사라졌던 여자. 그 여자가 배순경 부인이라며 섬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질기고 질긴 악연처럼.
 “그 여자였어.”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5. 3 ××사태 중심에 서있었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한 가운데에. 당시는 5공 말기여서 시민들과 학생들의 데모는 날로 격화되고 있었다. 더구나 신군부가 장기집권 태세를 보이자, 재야단체들이 일제히 궐기하고 일어섰다. 더 이상 군부에게 정권을 맡겨둘 수 없다며. 하지만 군부도 이에 질세라 강력하게 맞섰다. 지금 그대로 민간정부가 들어선다면 신군부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입지가 줄어드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강경 진압 일변도로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신군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재야 쪽으로 정권이 넘어가면 그들은 모두 쿠데타의 주역으로 처벌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온갖 비리와 탄압과 독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복적 숙청과 처벌은 불을 보듯 뻔했다.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 죽여야 돼.”
 우리는 넝쿨장미가 무성한 초여름, 본서에서 내준 붉은 모자를 쓰고 ××역 앞 광장에 집결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닥치는 대로 행인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붉은 모자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적 같았으며, 나라를 망치는 빨갱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행인을 잡는 건 토끼몰이와 흡사했다. 한 시민이 지나가는 걸 붉은 모자가 불러 세우고, 행인은 항의하고 이어 붉은 모자의 욕설과 함께 집단 구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밤이 깊어갈수록 붉은 모자들은 사자가 토끼를 잡듯이 시민들을 잡아 족쳤다. 얼굴은 손수건으로 가리고 손에는 각목을 든 채. 나도 또한 그들과 같이 복면을 하고 시민들을 잡아 족쳤다. 그것은 내 앞에 나타난 미스안이라는 여자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아니, 어떤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나의 분노는 그렇게 엉뚱한 곳으로 터져나갔다. 그리고는 손에 붉은 피를 묻힌 채 철수했다. 그날 붉은 모자 집단에 가세한 기관은, 경찰을 비롯해서 소방관은 물론이고 교도대에다가 해병대와 특수부대까지 끼여 있었다는 후문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돌과 각목과 피와 최루탄 가스가 난무하는 곳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단체나 사람을 척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붉은 해무를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씻어 내도 씻어지지 않는 검붉은 해무를.
 
 
 <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