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바다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희환의 책읽기 14

 무더위로 전국 각지의 피서지에 수백만의 인파가 몰리고 부산 해운대에는 300만의 피서객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한여름의 절정을 이루는 이때만큼 바다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계절은 없다. 그러나 자연으로서의 바다의 매혹은 잠시뿐, 우리의 삶과 역사는 바다를 철저히 변방으로 치부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륙과 중심을 향한 육지의 폐쇄주의에 갇혀 드넓은 삶의 터전이자 문명교류의 루트인 바다는 내내 무지의 세계로 버림받았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스테디셀러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로 역사민속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주강현 선생은 최근 바다와 해양문화사에 대한 지적 탐구를 정력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관해기(觀海記)’(전3권, 웅진지식하우스)는 연전에 출간된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웅진지식하우스, 2005)에 이은 우리 바다에 대한 거대한 해양문화탐사기이다.
 539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바다에 얽힌 세계문화사의 여러 장면들을 풍부한 시각자료와 함께 다채롭게 엮어 보여준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을 통해 우리는 15세기 이후부터 바다를 정복한 세력만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군림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왜 조선은 세계화의 조류에서 밀려나 일본 제국주의와 구미 열강에 의해 그 운명이 좌지우지되며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바로 바다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한반도 역사를 요동치게 했던 모든 열강들이 해양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간 ‘육지사’ 중심의 사고에만 편중해 왔다는 것.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독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찾아 19세기 메이지유신과 정한론의 사상적 고향인 가고시마와 시모노세키를 답사하면서 생생한 해양문화사의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다.

 “아시아의 근대성엔 자비가 없다”(시 ‘백령도에서’, ‘먹염바다’)는 이세기 시인의 시적 표현은 바로 바다에 대한 우리의 무지몽매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주강현 선생이 이번에 출간한 ‘관해
기‘는 그런 점에서 우리 바다에 대한 핍진한 문화사적 보고이다. 전3권에 걸쳐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 바다의 과거와 현재를 집대성했다. ‘관해기(觀海記)’이란 제목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근 100여 년간 사용되지 않은 옛말이라 한다.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바다 읽기’ 혹은 ‘바다 가로지르기’가 될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바다에 관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풀어낸다.
 이 책에서 의도하는 ‘바다’는 단순한 자연적 바다만은 아니다.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는 ‘생명의 바다’ 그리고 ‘인문의 바다’라는 은유적 함의를 오지랖 가득 퍼 담고 있다. 돌이켜보면 바다는 천출(賤出)로 내몰린 ‘갯것’들의 터전이었다. 문화사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었으며,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존재였다. 남은 기록의 절대량이 부족해 바닷가 삶과 역사의 재구성은 고단하기만 한 작업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이런 까닭에 저자는 책을 풀어내는 방식을 생활사, 구술사, 미시사, 일상사, 민속사 등의 여러 방법론을 총동원하여 우리 바다에 얽힌 생활문화사의 복원에 진력을 다하였다. “육지사 중심에서 해양사를 포괄하면, 한반도 역사도 비로소 총체적으로 완결될 것이다”는 저자의 신념은 전국 각지의 바닷가와 섬을 답사하며 2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채록한 생생한 현장의 민속지식들로 현실화되고 있다. 본문 곳곳에 지은이가 수집한 600여 컷에 달하는 풍부한 시각 자료도 좋은 자료가 된다. 남쪽바다를 다룬 제1권, 서쪽바다를 다룬 제2권, 동쪽바다를 다룬 제3권 중에, 독자 여러분이 어느 계절이든 찾고자 하는 바다가 있다면 그 어느 한 권을 찾아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바다에 나서볼 일이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