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해무-14회
 부면장은 50대 초반으로, 이곳이 고향인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자신이 태어난 섬을 자랑했는데, 자기가 도시로 나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떠벌렸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그는 이 작은 섬에서만 20여 년을 근무해 오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면사무소를 대표해서 지서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서장 부임 행사에 면장 1호차인 지프차까지 흔쾌히 내주었다. 부면장이 올라오고 나서 고교 교감과 우체국장이 함께 얼굴을 디밀었다. 그들은 비슷한 나이에, 둘 다 가족을 육지에다 두고 들어와서는,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마고우처럼 어울려 다니며 술추렴을 벌였다. 그들은 지서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자, 드디어 신임 지서장이 부임했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올라왔다. 물론 교감은 교장을 대리해서 온 것이고, 우체국장은 행사만 있으면 안가는 곳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얼굴을 디민 것이었다. 아무튼 부면장을 선두로 해서 고교 교감과 우체국장, 농협 분소장, 면대장, 새마을 지도자, 이장, 민정당 지도장 고정근과 어촌계장 마삼육, 전직 파출소장 이경천도 자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각기 술과 안주를 사들고 와서는 먹고 마시고 떠들어댔다. 강주임은 관내 유지들이 자신의 부임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몰려들자 입이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덕망이 높으신 분이 오셨으니 지역사회가 편안해 지겠습니다.”
 교감의 덕담에 강주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관내 유지들께서 도와주시면 다 잘 되겠지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이야 제가 드려야죠.”
 강주임은 한없이 너그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술자리가 자연스레 지서 안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거나한 2차가 시작되었다. 물론 동네 유지들이 계속 술과 안주를 주문했으므로, 파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 제법 취하면서 일어났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강주임이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즉 지서장 부임 행사에 민정당 지도장이 나타나서 떠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평소 지서장 알기를 뭐같이 여기던 고정근이 한 마디 씹어뱉었다.
 “지서 주임은 뭐 대단한 자린 줄 아시오?”
 그러자 강주임이 발끈했다.
 “지도장은 또 대단한 거요?”
 사태 수습에 부면장이 나섰고, 그들의 말다툼은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기관장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당한 고정근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맥주를 연달아 몇 컵 들이키더니 빈병을 거꾸로 들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강주임의 머리를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강주임이 헉 하며 뒤로 물러앉았다. 그와 동시에 고정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자가, 지역사회 무서운 줄 모르는구만.”
 나는 고정근이 강주임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맥주병을 머리 위로 치켜들 때까지만 해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고정근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고정근의 손에서 맥주병을 빼앗아 던졌다. 그리고는 멱살을 비틀어 잡고 지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고정근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듯 버둥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지서 정문까지 끌고 나가서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당신 죽고 싶어?”
 “최형, 그게 아니라.”
 고정근이 땅바닥에 쓰러진 채 얼버무렸다. 나는 계속 윽박질렀다.
 “뭐가 그게 아니야, 지도장이면 다야? 여기가 어디라고 맥주병을 들고 설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