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태풍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강원도에는 수해에 관광객 감소라는 ‘이중고’로 주민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올 여름 참으로 ‘징’한 태풍을 보며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일인 것 같다. 그 해 태풍으로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개울가에 있던 논들이 물에 푹 잠겼다. 비가 그치자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바람과 물에 잠기고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신다며 나를 앞세워 논으로 가셨다. ‘본논’으로 불리는 논은 개울가에 있었고 논 둑에는 미루나무가 울창해 그늘진 곳이 많았다. 그 곳에는 이미 여러 명이 고기를 잡아 철렵을 하는지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 놈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착하다고 소문난 이웃집 아저씨가 시퍼런 낫을 쳐들고 철렵 중인 사람들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철렵을 하던 사람들은 ‘나 죽는다’며 달아났고 아저씨는 뒷통수에 이렇게 소리쳤다. ‘에이, 이 나쁜 놈들아! 한해 농사를 망쳐 속이 상해도 벼 한포기라도 더 건지려고 일하는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코 앞에서 웃으면서 철렵을 해”
지방선거가 끝나고 최근 한나라당 경기도당 간부들의 ‘수해골프파동’을 보면서 어릴적 ‘낫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기억을 4년전 지방선거 뒤로 되돌려 보자.
선거결과 나라의 4분의3을 ‘싹쓸이’한 한나라당은 대선 여론조사만 하면 상대 후보 보다 10% 포인트나 앞섰다. 여론은 ‘한나라 대세론’이었다. ‘잘나 갈 때 조심하라’며 한나라당 지도부와 당시 대통령 후보는 ‘오버’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히팅크 초청행사에 가족불러 기념촬영해 물의를 빚은 일, 안상수 인천시장의 ‘각서파동’, 성남 이대엽 시장의 호화관사 등 사고의 연속이었다.국회에서는 김용균법률자원단장이 ‘지역감정 유발 발언’을, 이규택총무는 ‘빨치산 발언’으로, 김무성 대통령후보 비서실장은 ‘대통령 유고 발언’으로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놨다. 또 하순봉 최고위원은 ‘특권의식 조장’ 발언으로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당직개편은 어땠나. 영남일색으로 짜여져 ‘도로 민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지자체는 한나라당 일당 지배구조로 짜여져 곳곳에서 자질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바람 잘 날’ 없던 한나라당은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연말대선에서 실패했다.
올해 지방선거 뒤 한나라당의 모습은 마치 거꾸로 4년 전 시계를 보는 듯 하다. 아니 더 오만해 진 듯 하다.
지방선거를 싹쓸이한 한나라당, 몸조심을 당부하는 대선 주자와 당 지도부에 분위기 또한 대세론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사고도 재판이다. 경기도당 지도부는 수해 지역에서 골프를 치다 들켰다. 단양군수는 홍수피해 속에 음주가무의 유흥을, 안성시장은 외유를 떠났다. 또 공성진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다뒤집히고 감옥간다’는 막말을 해댔다.이효선 광명시장은 ’전라도 놈들...’하면서 특정지역 출신을 폄하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광역단체장들은 연봉을 장관급으로 높여 달라며 아우성이다. 당직개편 역시 영남 일색의 ‘도로 한나라당’이다.
4년전 승리를 두고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워낙 집권층이 죽을 쑤고 노무현후보가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랬다.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 압승을 두고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싫어서 찍어 줬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4년전 보다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판박이 행태’를 보이는 한나라당은 과연 내년 대선에서 그들 생각대로 뜻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노자의 도덕경 44장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知足不辱) 적당할 때 그칠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는다(知止不殆).그리하여 오래 갈 수 있는 것입니다(可以長久)’라는 말이 있다. 한나라당이 수권정당을 목표로 한다면 되새겨봐야할 말이다. 올해 여름 휴가는 강원도 주민들의 요청처럼 강원도로 피서를 가서 하루는 수해복구 자원봉사로, 나머지 이틀은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