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끝난지 50일이 다 됐다. 새롭게 자치단체의 수장이 된 이들과 재선, 또는 3선의 고지에 오른 이들이 임기도 2주째 접어들고 있다.
새 출발을 하는 자치단체장들은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집행부의 진용을 다시 짜는 등 분주하다. 적잖게 구성원의 변화를 겪은 각 의회 역시 서둘러 의장단과 상임위 구성을 마치는 등 부산한 모습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치단체장들과 중책을 맡은 의회 의원들에게 거듭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이들이 취임 초 갖가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내놓은 화려한 말의 성찬이 그만한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당선 직후부터 50일, 취임 이후부터는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난 몇 가지 현상들은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지난 선거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 이른바 ‘싹쓸이’라는 기형적 결과를 만들어냈기에 우려는 더욱 심하다.
일테면 몇몇 기초자치단체 의회에서 벌어진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자리 독식 현상이 그렇다. 선거를 통한 자치단체장 싹쓸이에 힘입었는지(?) 해당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숫적 우위를 앞세워 의회 운영의 핵심적 자리들까지 싹쓸이했다. 결국 의회는 초장부터 파행사태를 빚었고,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자치단체 의회 의장들은 언론을 통해 ‘여론수렴’이니 ‘의회 민주주의’니 ‘화합과 타협’ 등등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따로국밥’ 현상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자신이 내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기조차 했다.
초장부터 싹수가 노란 정황은 몇몇 자치단체장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새롭게 취임하는 마당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자’하는 마음은 이해 안 가는 바 아니다. 하지만 수 천만원씩 털어 넣어 관사와 집무실을 꾸미는 모양새는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게다가 선거 때 도움을 받은 이른바 ‘측근’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 무리수를 둔다든지, 어떻게든 주변에 두려 하는 모습 역시 곱게 봐주기 어렵다.
특히 정치인도 아닌 자치단체의 몇몇 간부 공무원들에게 ‘누구누구 사람’이란 딱지를 붙이는 위험천만한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급기야 전격 단행된 인사 배경에 이런 판단이 작용했다는,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첩보까지 나도는 판국이다.
더욱 딱한 것은 기록적 폭우로 국가위기경보까지 내려진 상황에서도 몇몇 자치단체장들은 3일간의 황금연휴 기간 자리를 비웠거나, ‘의무방어’ 수준에서 잠깐 집무실에 나오는 정도로 그쳤다는 것이다. 해당 자치단체에 큰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라지만 해도 너무하단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오죽하면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과거 관선 시대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란 탄식이 나오겠냐 싶다.
취임 초기 불과 2주 새 드러난 이런 몇 가지 일로 남은 4년을 싸잡아 암울하다 예단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조짐은 확실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싹쓸이 대세’에 힘입어 얼떨결에 자치단체의 수장이 된 함량미달의 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좋아지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회고 뭐고 ‘모두가 내 편’인 상황인지라 권력의 단맛에 취해 휘두르는 일부 자치단체장의 섣부른 칼날을 제어할 사회적 기제가 취약해졌다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남은 것은 시민사회와 언론의 몫이다. 자치단체에 대한 관심과 감시를 극대화하는 한편, 이미 법률을 통해 보장된 주민소환제, 주민감사청구제, 주민소송제 등 주민들의 권한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이익은 결국 스스로 참여하는 만큼 지켜지고 극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