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넝쿨장미-32
내가 우물거리고 있자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걱정 마세요. 부담주지 않을 테니까요.”
 “부담이 돼서가 아니야.”
 “그러면 결혼생활이 깨질까봐요?”
 “우리는 한 팀이잖아. 그것도 일대일 감시를 하는.”
 “그러니까 더 좋잖아요.”
차지연은 마치 농담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농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진실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이었다. 물론 그녀가 정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차지연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차창 밖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아무리 매력적인 여자일지라도 연애를 하자는 제의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파출소 근무 당시 만난 가애라는 여자애의 사건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가애가 불쌍하고 애처로워서 도와주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조언을 해주고, 사건에 연루되면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물론 가끔은 데이트를 하며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단순한 동정과 관심의 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애는 나의 관심과 동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애정공세를 펼치며. 결국 가애는 우정과 신뢰를 모두 잃었다. 그리고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내게서 떠나갔다.
“아, 따분하다.”
 차지연이 승용차 등받이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를 따라 누우며 유리창을 열었다. 그러자 향긋한 장미꽃 내음이 승용차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가슴을 펴고 달콤한 꽃내음을 들이켰다. 날씨는 벌써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매일처럼 승용차 안에서 따분함을 참으며 무언가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 내가 하품을 하자 차지연이 나직하게 시를 읊조렸다.
“어딘가에 아름다운 마을은 없는가
하루의 일과 끝에는 한 잔의 흑맥주
괭이를 세우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나 여자나 커다란 조기를 기울이는

어딘가에 아름다운 거리는 없는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단 가로수가
어디까지나 잇달았고 제비꽃 석양녘은
젊은이들의 다정한 속삭임이 충만한

어딘가에 아름다운 만남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숙함과 우스꽝스러움과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랑은 없는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당신을 만나서 더 없이 행복했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나는 그녀가 외운 시를 듣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방금 전에 차지연이 읊은 시는 유키코가 좋아하는 시였다. 더구나 유키코는 그 시를 내게 들려주면서 사랑을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홋카이도의 어느 찻집에서. 그때 나는 이 시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그녀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내용이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시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6월에다가 유키코가 자작시를 첨가한 것이었다. 즉 4연 중 마지막 연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원작이 아니라, 유키코가 지어서 붙인 내용이었다. 그것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런데 그 시를 차지연이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외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