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 사회부장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조선은 혁명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했다. 청나라는 급히 군대를 파견했다. 일본은 텐진조약을 명분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군사요충지를 점했다. 조선의 지배권을 손에 넣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던 두 나라는 같은 해 남의 땅 조선에서 전쟁을 벌였다. 청일전쟁이다.
 경술국치를 1년 앞 둔 1904년 일본은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만주)의 분할 지배를 염두에 두고 있던 러시아를 공격한다. 뤼순군항을 기습공격해 러시아군을 궤멸시킨 일본은 이후 조선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 진출을 이루었다.
 이 두 사건 이후 조선은 36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는 치욕의 역사를 강요당했다. 힘이 없어 외교적 몸부림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있던 조선은 결국 주변 강대국들의 전리품 노릇을 했다.
 100여 년이 지났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한류가 일본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를 휩쓸고 있다. 스포츠도 강국이다. 국방력도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한반도 특히 북한을 둘러싼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100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곧 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이들 강대국들의 전략과 전술은 북한의 붕괴 이후를 겨냥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 문제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도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언젠가는 붕괴할 것이라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이들 강대국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실제 북한이 붕괴될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공동으로 신탁통치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배제된다. 이 시나리오는 이라크 전이 끝나갈 무렵인 2004년 말,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 가능성이 제기될 무렵에 나왔다. 미국은 핵공격으로 북한이 붕괴되는 전쟁상황은 물론 그 이후의 북한 통치방식까지 마련했다. 물론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정작 권리를 갖고 있는 한국이 배제된 이같은 시나리오는 북한 붕괴가 한반도 분단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분단의 시작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 끔찍하다. 최근 군사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에게 역할을 주는 대신 군사·외교적으로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내고 있다.
 다음으로 유력한 것이 중국과 한국의 공동 통치다. 중국이 갖고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한국은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지만 왜 중국이 끼어드는 것일까. 중국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역사를 꺼내 놓는다. 바로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부의 하나였고, 그래서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음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부였기 때문에 과거 고구려 지역인 북한도 당연히 중국에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래서 북한의 정권이 붕괴된 상황에서 중국이 당연히 그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붕괴되면 바로 중국의 인민해방군을 진주시킬 명분을 여기서 찾고 있다. 바로 ‘교묘한 영토 가로채기(subtler land grab)’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따라 불거질 영토분쟁, 즉 간도 문제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을 떠나 아예 북한지역을 차지하거나 또는 최소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무서운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앞서 제기된 시나리오에 대응한 철저한 준비와 대처가 마련돼 있을까. 아니면 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게다가 국제법상으로 북한지역은 미수복지구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당연히 한국의 영토로 편입돼 즉각 점령 및 통치가 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고만 있을까. 통일은 환상이 아니라 곧 새로운 시련의 시작일 수 있다. 철저한 대비와 대응책이 없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