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넝쿨장미 - 25화

“정말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계장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지부장이 어제 텔레비전 대담프로에 출현했어요. 그것도 저녁 골든타임 시간대에. 그리고는 정부 정책이 어떠니 전교조 시책이 저떠니 하며 떠들어댔어요. 도대체 두 사람 어디서 무얼 한 겁니까?”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시간 중에 하필이면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출타를 하다니. 그것도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하기 위해서. 나는 차지연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차지연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 있었으니까. 질린 것은 30여 명의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경직된 표정으로 나와 차지연을 주시하고 있었다. 계장의 입에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를 염려하면서. 나는 더 이상 상황을 방치하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못 진지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사실은 어제… 차형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엘 갔었습니다.”
“차형사가 몸이 아팠다고?”
“그렇습니다.”
“어디가 아팠는데?” 계장이 날카롭게 다그쳤다. 직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차지연을 쳐다보았다. 차지연의 말에 따라서 계의 분위가 급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차지연이 적당히 대답하지 못하면 업무를 유기한 것이 되고, 그에 따른 징계가 불가피했다. 그와 함께 계장의 기분도 나빠질 것이고, 모든 직원은 계장 눈치를 보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화기애애했던 계 분위기도 냉랭하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모든 직원이 촉각을 세우고 있을 수밖에. 차지연이 직원들을 쓱 둘러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서부터 생리가 불규칙하게 나와서요.” “생리?”
계장이 의외라는 듯이 반문했다. 직원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계장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오지 않는 기침을 큼큼거리며 몇 차례 했으니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차지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차지연은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는… 생리 때만 되면 통증이 심하거든요. 아무것도 못할 만큼.” “그러면 한 명이라도 자리를 지켰어야지.”
계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끼어들었다.
“혼자 보내려고 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사람 때문에 내가 얼마나 깨진지 압니까? 허위보고 한다고.” “죄송합니다.” “아무튼 차형사가 아파서 그랬다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이유를 대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지부장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서 상세히 보고하란 말이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서장님이 중징계하라는 걸… 내가 사정해서 겨우 모면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맡은 일에 진력해 주기 바라고.” 계장의 누그러진 말투에 직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이 수월하게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듯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