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출가 조일도 타계 1년
 인천 연극의 기둥을 세우고 중흥기를 이끌었던 연극 연출가 조일도가 타계한 지 1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부활했다.
 그가 생전에 직접 쓰고 연출했던 희곡들을 후배 연극인 김병훈(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이 취합 정리한 조일도 창작 희곡집 ‘버리고 간 노래’(도서출판 다인아트)는 30여 년 간 예술혼을 불태우다 스러진 조일도의 예술세계를 현재로서 유일하게 조망할 수 있는 유고집인 셈이다.
 
조일도의 예술관을 집약해 놓은 육필 메모.
그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삶에 주목하고 표현하고자 노력해왔다.
이 책에는 풍자와 해학이 넘실거리는 마당극 풍의 ‘골생원’, ‘북치고 장고치고’ 두 편과 다분히 연극 문법에 충실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 ‘버리고 간 노래’ 두 편, 그의 예술관의 집약판이라 할 수 있는 ‘왕에게’ 등 모두 다섯 편의 희곡이 엮여있다.
 극이 아닌 이야기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한 ‘골생원’은 조선시대 강릉을 배경으로 주색에 빠져 타락하고 방탕한 기행을 거듭하는 유생 골생원과 양반들에게 버림받아온 기녀 매화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물론 ‘골생원’에는 유생과 기녀의 판에 박힌 ‘러브 스토리’만 있는 것이 아닌, 골생원으로 대표되는 지배층의 무능력과 방탕함을 익살스럽게 조소하는 풍자가 극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조소와 풍자는 지배층에 대한 반항을 배경으로 하는데 극중 골생원의 몸종 방자는 “남들 앞에서 이놈저놈 하지 마쇼. 부리는 종놈이야, 단둘이 섰을 때 종이요 양반이지. 특히나 오늘 같이 먹고 마시는 농탕치는 날 대중 앞에서 이놈저놈은 약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사사건건 골생원에게 대든다. 하지만 방자의 타박에 골생원은 마땅한 대응을 못한 채 난감해 할 뿐이다. 오히려 돈도 없이 연인 매화에게 줄 비단을 사려다가 시전 아이에게 따귀를 얻어맞을 뿐이다.
 무대에 오른 작품을 봐야 극의 참맛을 느끼겠지만 이 희곡은 골생원의 질탕한 성적 행태를 엽기와 변태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지 않으며 익살스럽게 풀어내 소설을 뛰어넘는 가독성이 있다.
 지난 12일 조일도 1주기 추모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는 ‘북치고 장고치고’도 ‘나박하’라는 엿장수 광대의 흥겨운 엿타령 가락에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고달픈 세상살이의 고뇌가 실려 있고 온갖 부정과 부패, 위선에 대한 풍자가 날을 세우고 있다.
 이 책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는 희곡 ‘왕에게’는 조일도의 예술관이 집약돼 있는 결정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인 리어왕, 햄릿, 오셀로, 맥베스를 등장시킨 ‘왕에게’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셰익스피어 비극 캐릭터에 대한 탐구이자 이들의 비극적 상황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접목과 해석 작업이다.
 그러나 조일도는 이 희곡에서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꿈꾸는 이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가장 비극적 상황을 연기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상황을 설정하고 궁극에 가서는 이들 모두가 진정한 비극을 전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조일도 스스로 셰익스피어에게 극존칭의 경의를 표하고 만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주인공들의 성격이 수만 가지로 변주될 수 있음을 보여줘 당대의 연출가와 연기자들의 노력과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후배 김병훈은 “형의 작품에는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이 자주 나온다”며 “그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성을 가졌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자신도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다”고 조일도가 셰익스피어를 탐미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설명했다.
 조일도는 1948년 인천 출생으로 한양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서울예대 연극과를 마쳤다.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돼 극작, 연출, 영화제작 등 본격 활동을 시작, 1980년에는 고향 인천에서 극단 ‘집현’을 창단하고 1982년 인천출신 배우 전무송 등을 끌어들여 ‘집현’의 창단극 ‘리어왕’을 직접 연출 무대에 올렸다. 연극 외에도 문화행정가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바 있는 그는 인천문인협회 회장을 잠시 맡았고 2005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연극 50여 편을 연출했다. 1만 원, 355쪽./조혁신기자 (블로그)mr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