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능산스님-7화
토굴이란 것이 얼마나 운치가 있고 멋있는 곳인가. 체관(諦觀)이나 의천(義天), 청허(淸虛) 같은 고승들도 그런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직접 파고 뚫은 굴에 들어앉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행에 전념하는 고승을 그리던 나는, 실망한 나머지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여기가… 토굴이란 입니까?”
“그럼요. 토굴이고말고요.”
“다 쓰러져 가는 민가인데요.” “이런 곳도 중이 머물면 토굴이 되는 겁니다.”
능산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화를 삭이며 능산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토굴에서 기거를 하며 무언가를 닦고 있다는 인물 또한 능산 못지않게 걸물이었다. 그는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삼십대 후반의 사나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의 외모와 행색이었다. 즉 머리는 스님처럼 짧게 깎았으나 중은 아니었고, 언뜻 보면 도인의 면모가 풍기나 도인도 아니었다. 얼굴 또한 반질반질하고 멀끔하게 생겼지만, 하는 짓은 칠십 노인처럼 굼뜨고 어설펐다. 어쨌든 나는 그 남자가 무얼 하러 토굴이란 곳에 머물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닦고 무엇을 수행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공기 좋고 한적한 곳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그러나 능산은 자칭 도인이라는 남자를 한껏 추켜세웠다.
“김방주는 이미 대탈속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이에요.”
능산의 말에 의하면, 계룡산에서 도를 닦다가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어갔으며, 어느 날 갑자기 승복을 벗고는 돈을 번다고 사업체까지 차렸다. 그러다가 IMF를 맞았고, 가진 돈을 모두 날린 뒤 북한산 자락에, 그것도 원효봉과 의상봉이 올려다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들어앉았다는 것이다. 물론 토굴에 들어온 목적은 몸과 마음을 닦고 세속을 잊어보자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몸과 마음을 닦는다기보다, 골방에 처박혀 밤낮을 술로 지새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토굴이라는 방 한쪽 구석에 빈 소주병이 수북이 쌓여 있었으니까. 우리는 두세 평은 됨직한 작은 방에서, 그것도 이불과 옷, 책 등이 제멋대로 널려 있는 곳에서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 김 방주는… 보기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능산이 방주(房主)라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오월의 상쾌한 풀내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건 풀냄새뿐만이 아니었다. 맑고 청량한 두견새 소리와 부엉이 울음소리도 풋풋한 풀내음에 섞여 들려왔다. 더구나 인근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독경 소리는 술맛을 돋우고도 남았다. 독경소리를 듣던 능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요 앞에 백화사라는 절이 있는데, 나보고 주지 자리를 줄 테니 오라고 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요.”
“아, 그랬습니까?”
방주의 대꾸에 능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절이 사연이 많아서.”
“사연이라니요?”
“그 절은… 백화사라는 이름처럼 비구니한테 더 잘 어울려요. 그러니까 사찰 이름대로 주장승도 따라간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님이 파계를 하거나 신도들하고 스캔들이 나기 십상이지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지금도 아마 비구니가 주지를 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비구니들이 그렇게 들락거리는구만.”
방주라는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멀리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이어 훈풍이 불었고, 꽃내음이 창을 넘어 들어왔다. 나는 울적한 심경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그러나 좀처럼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있던 능산이 흥에 겨운 듯 시 한 수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