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 사회부장
 1992년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특수부대 중령인 휴고 차베스가 정부의 부정부패와 가난에 시달린 시민들의 폭동을 업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부군이 그의 군대를 포위하고 투항을 권유했다. 진압에 몰린 차베스는 정부군에게 “투항할테니 국민들에게 직접 연설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정부는 허락했다. 차베스는 국민들에게 “나는 가난에 찌들은 여러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쿠데타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국민들은 그의 연설에 열광했다. 그는 투항해 감옥으로 갔다.
 그로부터 6년 뒤 1998년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다. 선거에서 중·하류 저소득층의 절대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법부 개편, 제헌헌법도 제정했다. 2000년 7월 재집권했다. 2002년 노조의 총파업, 유혈사태로 궁지에 몰려 사임했다가 2일만에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기도 했다.
 차베스는 토지와 주택의 공개념을 도입했다. 부재지주의 유휴농지를 사실상 몰수해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소유주의 동의 없이도 비어 있는 아파트에 오갈 데 없는 ‘홈리스’들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했다. 또 차등가격제와 제한입찰제를 통해 기업 소유와 경영에 종업원의 참여를 유도했다. 또 정부 재정의 80%를 차지하는 석유 수입 중 일부를 풀어 빈곤층에 교육·의료 서비스 및 각종 보조금 지원을 확대했다. 서구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지주나 부동산 보유자에게 빼앗은 재산을 빈민에게 나눠줬다. 전형적인 ‘좌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펼쳤다. 당장 혜택을 보는 빈곤층은 차베스의 정책에 박수를 보냈다.
 그는 정치에서도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다수의 대중이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직접 TV에 출연해 대국민연설을 한다. 내용의 대부분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골적이며 선동적인 언사에 국민들은 열광한다. 석유사업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은 더 살기가 어려워졌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기업 투자는 극도로 위축됐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강화되고, 사유재산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에 나설 기업은 많지 않다. 1998년 1만2천개였던 산업연합회 회원 기업 수가 2004년에는 절반인 6천개로 줄었다. 당연히 일자리도 없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 중턱에는 빈민들의 무허가집들은 대부분 ‘도둑 전기’를 쓴다. 치안도 불안하다. 국민 절반이 총기를 갖고 있다. 빈부 차도 심하다. 수도 카라카스 주변에는 큰 슬럼가가 있어 사회불안의 씨가 되어 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만큼 많은 매장량의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 등 엄청난 지하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많은 정치정문가들은 이같은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양극화문제를 해소하자며 내놓은 정책중 상당수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당장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꽃감처럼 달기만 하다. 그러나 꽃감이 떨어진 뒷날은 암담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에서부터 대기업에 대한 정책 등 가진자들은 ‘힘겨운 나날’이라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은 자유주의 사고(思考)를 키우는데 일조를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국가경제를 망치고 결국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정치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취 할 바가 못 된다.
 5·31 지방선거에서도 변형된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후보들이 표가 많은 쪽의 인기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실현성 없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포퓰리즘의 한 형태다. 정부나 정치지도자 모두 미래를 위한 합리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엄청난 자원을 갖고도 포퓰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해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는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는 없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뒤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줬다. 남아프리카에는 다이아몬드를 줬다. 사막이 대부분인 중동에는 석유를 줬다. 하느님은 남미의 베네수엘라에 금과 다이아몬드, 미인을 줬다. 잠시 생각하더니 또 석유를 줬다. 그러자 수행한 천사가 “하느님, 아무것도 주지 않은 곳이 많은데 왜 베네수엘라에만은 석유까지 다 주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하느님은 “여기에는 이런 것을 모두 다 줘야 겨우 먹고 산다”고 답했다. 베네수엘라의 뜻있는 지식인들이 하는 자조(自嘲)적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