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흥모 경기본사 정경부장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건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개가 사람을 물어 뉴스가 된 사례가 발생했다.
의왕시에서 초등학교 3년생인 권모(9)군이 개에 물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권 군의 주검은 병원에 안치돼서도 여러 날 돌보는 이 없이 오갈 데를 찾지 못했다. 이틀 뒤에는 과천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60대 노인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은 약간의 동정을 샀을 뿐 더 이상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지난주에 우리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을 주제로 기획취재에 나섰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온갖 위협 속에서 비닐하우스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김모(63) 노인은 그 과정에서 만났다. 의왕시 초평동 세평 남짓한 비닐하우스가 지난 10년의 생을 이어온 그의 보금자리였다. 김 노인은 15년 전만 해도 어엿한 화훼농장 사장이었다. 계속되는 꽃시장의 불황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가족들의 얼굴을 본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김 노인은 그나마 동사무소에서 매월 20만원씩을 지원받는 생활보호대상자. 관절염에 고지혈증, 백내장, 고혈압, 온갖 병마가 엄습해오는 추운 겨울날의 그의 유일한 취미는 TV시청이다.
지난 겨울 동네 한 교회에서 마련해준 판넬로 등만은 따습다. 사람 만날 일이 없기에 외로움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비닐하우스에서 가녀린 생을 이어가고 있다. 김 노인의 경우는 그런대로 양호한 편에 속한다. 이웃의 도움으로 친구 집에 동거인으로 등록해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김 노인은 축복받은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거주지 주소를 부여받지 못한다. 비닐하우스에서는 꽃이 살면 보호도 받고 지원도 받지만 사람이 살면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단속의 대상이 될 뿐이다. 미등록 사회복지 시설이 단속의 대상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나마 주소가 부여된 경우는 사람이 아니라 화훼업소로 등록이 된 경우였다. 이들이 통계에 잡힐리 만무했다. 도청에는 적어도 이들에 대한 통계는 물론이고 개략적인 상황조차도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소방재난본부는 대략적인 통계를 갖고 있었지만 그나마 정확성이 떨어지는데다 신원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인간을 보호하자는 목적이 아니라 재난관리 대상으로만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도가 재난관리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삶은 의외로 많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천210개 단지가 있고, 2천여 개의 동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중에는 영세 화훼농가도 있고, 또 개중에는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또 개발에 밀려 어디론가 떠나야 할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이들을 대하는 국가나 사회의 태도는 ‘방관’ 그 자체였다.
그들 중에 일부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국민으로도 주민으로도 대접받지 못한다. 내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궁리가 있을 수 없다.
사회복지 당국의 해명에도 일리는 있다. 사회복지사가 담당해야 하는 빈곤계층 주민 수만으로도 일손이 모자란다는 게 첫째 이유이다. 빈곤계층에 대한 사회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대개는 주소지도 없는 이들의 상황이 급하다고 주장하면 욕이 되는 게 현실이다.
분명히 꽃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국가로부터도 지방정부로부터도 버림받은 게 분명하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데야 할 말이 없지만 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심각성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절망했다. IMF 이후 중산층이 일거에 무너지고 사회가 양극화하면서 절대 빈곤층의 수효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누가 꽃보다 아름답기를 희망하는가. 다만 생존은 보장받아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워낙 허술한 상황에서 언제 사회복지 서비스전달체계를 세우고 어쩌고 하겠는가. 공동체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주 우리는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 중에 ‘정책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는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절망이었다.
흔한 말로 없는 사람 지내기엔 겨울이 더운 여름만 못하다. 곧이어 닥쳐올 한파는 분명 이들 중에 누군가를 제물로 요구할 것이다. 사람이다. 마땅히 주목받는 삶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생을 염려하고 보장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산이 어쩌고, 인원이 저쩌고, 여건이 아니다. 관심부터 보여 달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