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익점’이라는 이름 석자를 잘 안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당시 금수품이던 목화씨를 붓뚜껑속에 몰래 숨겨 들여왔다. 이후 3년에 걸친 노력끝에 재배에 성공, 백성들의 의복재료를 삼베(麻布)에서 무명(綿布)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복식(服飾)사에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던 문익점의 행위는 그러나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산업스파이사건’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첨단기술유출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다. 개인 또는 소수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조차도 없는 비양심앞에 장래 우리나라의 국운이 달려있을 지도 모를 소중한 자산이 줄줄 새나가고 있다.
지난 9월 인천 남동산업단지에 있는 컴퓨터부품생산업체인 A사는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적발한 사건앞에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내부 직원에 의해 기술이 그대로 유출됐더라면 이 회사는 앞으로 5년 간 4천억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할 상황이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국내 유수 반도체 제조기업인 B사로부터 최첨단 반도체 제조공정기술인 ‘낸드 플래시(NAND Flash)’ 메모리기술을 빼내 중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려던 전현직 직원 7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만약 이같은 음모가 적발되지 않았다면 B사는 향후 5년 동안 무려 12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검찰은 추산했다.
그 동안 산업스파이들의 주요 공략대상은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휴대폰, TFT LCD 등 IT분야였으나 최근에는 자동차, 생명공학, 심지어 개인신상정보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정보라면 가리지 않고 표적이 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도 없어진 지 오래다.
하드디스크 복사와 해킹, 도·감청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방법도 더욱 은밀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첨단기술의 무분별한 유출은 그 피해가 천문학적인데다 기업은 물론 자칫 국가의 한 산업군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업간 국경없는 경쟁을 감안할 때 산업스파이들의 활동은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9월부터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기무사가 참여하는 ‘정보·수사기관 산업보안협의회’를 운영하는 등 정부차원의 강력한 대처속에 기술이 빼돌려지기 전에 적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부터 올 6월까지 산업스파이 적발건수는 82건, 추정 피해예방액은 77조원에 달한다. 특히 2004년 한 해 동안 무려 26건이 적발된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이처럼 세상에 알려진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산업분야에 걸쳐 다방면으로 기술유출이 이뤄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며칠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와 인천지방중소기업청, 인천상공회의소 등 3개 기관이 첨단 산업기술보호를 위한 협력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전국에서 처음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으로 국정원 인천지부를 중심으로 ‘인천지역 산업기술보호 실무협의회’를 구성, 첨단기술보유산업체와 중소기업, 대학, 연구소의 우수기술 및 인적자원보호, 보안시스템구축 등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춰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호가 활짝 열리고 있는 중국 및 북한진출의 전진기지, 국제규모의 공항과 항만, 국내 최초의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100년만에 다시 찾아온 실로 절묘한 조화속에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힘차게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의 미래를 위해 이들 기관의 건투를 기대해본다. /이인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