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순간 미친듯이 살아갈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11일 오후 7시 인천대 총동문회의 초청으로 모교를 찾은 인기드라마 작가 최완규(42)씨가 강의실을 찾은 후배들에게 “드라마 종합병원을 맡았을 때 본능적으로 내 인생의 전화점이 될 것을 느꼈다. 드라마를 하는 2년간 정말 미친듯이, 짐승같이 일했다”며 한 말이다.
 최 작가는 1994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라마 ‘종합병원’으로 단번에 인기 드라마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전까지 쓴 작품이라고해봐야 드라마 작가 공모 당선작과 그 후 작가 훈련을 거치면서 쓴 습작 한 편까지 고작 두 편이 전부인 풋내기 작가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두달간 응급실에서 살았다. 의사들은 방송을 경계하는 집단이어서 취재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다 수련의장이 병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 뒤 1년6개월간 밤새 의사들 따라다니고 아침에 약품창고에 종이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며, 그렇게 병원에서 먹고자고했다.”
 그에게 방송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종합병원’은 원래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저 보조작가 정도로 일을 할 예정이었다. 예정된 작가의 포기선언이 방송사엔 도박으로, 그에겐 행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대박’. 같이 있던 의사들이 표현대로 ‘짐승같이 산’ 덕이다.
 “지금도 종합병원은 나 이외에는 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잘쓰고 못쓰고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열정의 문제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미국의 의학드라마 ‘ER’에 포진한 작가가 무려 18명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전문직 드라마’의 지평을 연 그의 노력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4년 인천대 영문과에 입학, 1년뒤 군에 입대. 제대후 가정형편으로 복학하지 못한채 2년간 안산 등지에서 노동자로 살았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피처인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꾸며, 후배들의 주머니가 얼마나 무거운지 정확히 짚어내던 ‘하이에나’로 악명을 날렸다. 그러다 30살이 되던 해 역시 후배의 집에서 TV를 보다 접수한 드라마 공모에 덜컥 당선됐다.
 종합병원 성공이후 ‘그들만의 포옹’의 실패와 자살 충동도 겪었지만, 그런 힘든 과정이 지금의 ‘허준’, ‘상도’, ‘올인’으로 유명한 드라마 작가 ‘최완규’를 탄생시켰다.
 그는 “종합병원을 준비하고 쓰던 그 시기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때다. 자신감이 없이 연애한번 못해본, 나의 20대 삶을 극복하게 된 때이기도 하다”며 “기회가 왔다싶으면 미친듯 열정을 갖고 노력하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김주희기자 blog.itimes.co.kr/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