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사상 최대의 피서인파가 몰렸다는 동해안, 그 뜨거웠던 여름도 다 가고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이다.
지난 상반기, 온 국민의 관심속에 인천은 물론 전국을 달구었던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항운노조 상용화)’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다.
일견 쉽게 해결될듯 보이던 ‘역사적 사건’이 노조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무풍해역에 들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범선처럼 이렇다할 진전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항운노조 비리에 대한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된 직후인 5-6월 한 달여 동안 노조상용화를 위한 행보는 숨가쁘게 진행돼왔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인천항운노조가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찬성 38표, 반대 14표의 결과속에 정부의 상용화정책 수용을 결정한 것이 5월2일. 고용보장과 현행 임금 보장 등을 뼈대로 한 해양수산부의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혁방안’발표(5월4일)에 이어 5월6일 노·사·정 대표가 해수부에 모여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모임의 의미를 놓고 “100년 한국 항만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이도 잠시, 이틀 뒤 인천항운노조 일부 평조합원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상용화 추진에 반발하며 ‘대책없는 상용화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
이러한 기류는 5월19일 치러진 대의원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8명을 뽑는 선거에서 비대위소속 출마자들이 무려 26명이나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전체 대의원 38명의 절반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조합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 집행부는 급기야 이날 노사협약 백지화를 선언하고 당초 올해안으로 매듭지으려 했던 정부의 상용화 시기 조정을 요청했다. 이어 6월9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찬성 49표, 반대 2표, 무효 3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협약백지화가 공식 결정된 이후 숨가쁘게 달려왔던 행보는 ‘뚝’ 멈추어 버렸다.
조합원들이 이처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상용화’에 반발하는 이유는 ‘불만’과 ‘불안’, 그리고 ‘조금 더 받고자 하는 욕심’ 때문으로 집약된다.
검찰수사로 압박해놓고,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해 전체 조합원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일부 집행부와의 협의만을 통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처사에 대한 불만이며 뿔뿔히 흩어져 개별 하역사에 입사했을 때 자칫 닥쳐올지도 모를 ‘신분변동’에 대한 불안이다. ‘그 동안 국가발전에 기여한 노고에 대한 보상’-정부가 가장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도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바라는 부분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지금 항만을 통한 부의 창출을 위해 온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시스템의 변화와 질좋은 서비스 제공 등 항만운영의 효율성 및 경쟁력 제고에 저마다 나서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수 년간에 걸친 논란끝에 부산과 인천항에 항만공사제가 도입되고,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작업이 추진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동북아 허브항’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인천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항운노조’ 상용화문제로 소모적인 갑론을박과 싸움이 이어진다면 심각한 내홍은 물론 경쟁의 대열에서 뒤처지리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협상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항운노조 자체설문조사결과 70.2%의 조합원이 ‘정부가 협상을 제의한다면 응해야 한다’고 나타났듯이 상용화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불만과 불안을 잠재우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현재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 지원 특별법안’ 입법을 추진 중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니까 따라오라’는 식의 방법이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난 이상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인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