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5일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불법도청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공개함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관련사실 인지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 행위가 계속된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에 따라 이번  사
건을 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 행위를 몰랐다면 국민의 비난은 국정원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기관이 4년간이나 대통령을 속여가면서 불법행위를 자행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 행위를 알았다면 김 전 대통령이 비판의  중심
에 설 수밖에 없다. 평생을 불법도청과 공작정치의 위협 속에 살면서도  인권옹호와
민주화에 앞장선 경력에도 상당한 흠결이 갈 전망이다.
    국정원은 이날 과거 국정원이 김 전 대통령의 근절지시에도 불구하고 불법 감청
을 일부 답습했고, 신 건(辛 建) 전 국정원장 취임후 1년이 지난 2002년 3월이 돼서
야 도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일단 김 전 대통령측은 불법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경환(崔敬煥) 공보비서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
부와 안기부의 최대 희생자로서 역대 국정원장에게 도청과 정치사찰, 공작,  미행감
시, 고문을 없애라고 지시했고, 퇴임할 때까지 계속 그런 의사를 강조했다"고  밝혔
다.
    국정원이 김 전 대통령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2002년 불법도청을 완전히 중단하게 된 배경과 관련, "당시 김
전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의지를 받들어 신 건 원장이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설
명한 대목은 여러가지 억측을 가능케 한다.
    이 대목이 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신 전 원장에게 불
법도청 행위 중단을 재차 지시한 반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은 이날 일문일답에서 "김 전 대통령이 취임 초
부터 불법 감청을 근절하라는 지시를 한 상태라 위에까지 보고를 하지는 않은  것으
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불법도청 근절 언급을 했다는  점
에서 "불법도청 행위가 계속 일어났기 때문에 불법도청 근절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
온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비서관은 "당시 야당이 계속 불법도청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말씀하신 것을 넘겨짚는 식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으로 생산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는 않았더라도, 국정원이 도청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 발표대로 신 전 국정원장이 지난 2001년 3월 불법감청 근절작업에  나서
고, 1년만인 지난 2002년 3월 담당 부서장의 책임하에 불법감청 장비를 소각 처리해
관련 작업을 마무리했다면 당연히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어떤 불법활동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
"고 잘라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보고 받지 않았더라도 당시 실세에게 보고됐을 개연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X 파일 파문에서 보듯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에서도 보고 라인은 핵심
실세 라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